[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스타 커플 최무룡·김지미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중앙일보

입력 2020.02.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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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기덕 감독의 ‘남과 북’(1965)은 한 여인을 두고 대립하는 남·북한 군인의 비극적 사랑을 다뤘다. 왼쪽부터 신영균·최무룡·엄앵란. [영화 캡처]

김기덕 감독의 ‘남과 북’(1965)은 한 여인을 두고 대립하는 남·북한 군인의 비극적 사랑을 다뤘다. 왼쪽부터 신영균·최무룡·엄앵란. [영화 캡처]

“(나는) 국가보다 사랑을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신영균) “사랑을 찾아온 자는 곧 자유를 찾아온 자 아닙니까.”(최무룡)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59)

<30> 연기·노래 다 잘한 최무룡

여성 배우들에 대한 배려 뛰어나
62년 세상을 흔든 초대형 스캔들
‘남과 북’ 등 6·25 영화서 함께해
‘외나무다리’ 포함 히트곡도 많아

김기덕 감독의 문제작 ‘남과 북’(1965)에 나오는 대사다. 나는 한국전쟁 중 헤어진 아내 고은아(엄앵란)를 찾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북한의 인민군 소좌 장일구 역을, 최무룡은 고은아의 현재 남편인 이해로 대위 역을 맡았다. 나는 정보참모(남궁원)에게 인민군의 주요 정보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아내와 다시 만나지만 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한 아내는 이미 이 대위의 아이를 뱃속에 가진 상태였다.

이 영화는 세 남녀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드러냈다. 개봉 당시 10만이 넘는 관객이 들었고, 그해 대종상 각본상(한운사)과 청룡영화상 각본상·남우주연상(최무룡) 등을 받았다. 영화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인기도 대단했다. 1983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찾기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게 어제 일만 같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 사랑을 찾아 철책선을 넘어온 장일구 소좌는 영화 말미에 이렇게 울부짖는다. “3·8선은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놈이 만든 가장 나쁜 것이다.” 내 고향 또한 황해도 평산인지라 이 대사가 지금도 가슴에 박혀 있다.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1964). [중앙포토]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1964). [중앙포토]

1960년대 초반 충무로의 최고 스타는 나와 김진규, 최무룡이었다. 김진규와 최무룡은 각각 ‘피아골’(1955)과 ‘탁류’(1954)로 먼저 데뷔한 영화계 선배였는데, 나도 61년에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을 만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스크린의 신사’ 김진규는 도회적 이미지를, 최무룡은 섬세하면서도 반항적인 캐릭터를,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앞세웠다. 동갑내기인 최무룡과는 "무룡아” "영균아” 부르며 격의 없이 지냈다.

무진년 용띠라서 이름이 무룡(茂龍)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출중한 외모로 주목받았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개성상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연극에 빠졌는데, 당시 그는 한국 최초의 ‘햄릿’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나와 최무룡은 6·25 영화와 인연이 깊다 ‘5인의 해병’(1961) ‘빨간 마후라’(1964)에서 전우애를 다졌다. ‘5인의 해병’에서 나는 인민군 탄약고를 습격하는 해병대 특공대 오덕수 소위로 출연한다. 최무룡·황해·박노식·후라이보이 곽규석을 인솔해 임무를 완수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사들은 하나둘씩 목숨을 잃는다. 나는 귀대하는 고무보트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최무룡의 품에서 전사하고, 최무룡은 내 아버지인 오성만 중령(김승호)에게 작전 수행 결과를 보고하면서 아들의 유품을 전달한다.

내 최고의 영화 ‘빨간 마후라’에서는 내가 편대장 조종사인 나관중 소령을, 최무룡이 후배 조종사 배대봉을 맡았다. 나는 각별한 동료 조종사이던 노도순(남궁원)이 전사하자 그 부인 지선(최은희)을 배대봉과 연결해준다. 나 소령은 지선이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후배들을 대신해 위험한 임무 수행에 나섰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다.

김기덕 감독의 ‘결혼반지’(1972). [중앙포토]

김기덕 감독의 ‘결혼반지’(1972). [중앙포토]

최무룡은 상대 배우를 돋보이게 했다. 여배우들에게도 신사적이고 매너가 좋은 배우로 기억된다. 89년 KBS ‘쟈니윤 쇼’에 최무룡·최은희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최은희는 최무룡에 대해 “연극을 할 때부터 많이 함께했는데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고 했다. 나에 대해선 “구수하고 텁텁한 느낌으로 포근히 안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대한 엄앵란의 촌평도 화제가 됐다. “진흙탕이 나왔을 때 최무룡은 겉옷을 그 위에 덮어 여배우가 밟고 지나가게 배려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면 “남편 신성일이었다면 ‘뛰어서 건너!’라고 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최무룡은 피가 뜨거운 배우였다. 안타까운 건 그의 빼어난 연기보다 파란만장한 사생활이 눈길을 끌었다는 점이다. 62년 홍콩에서 영화 ‘손오공’을 찍으며 가까워진 김지미와 간통 혐의로 구속된 게 대표적이다. 간통죄는 2015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지만 당시로선 연예계를 뒤흔든 초대형 스캔들이었다. 결국 그는 부인 강효실과 이혼하고, 63년 김지미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던 최무룡은 이후 영화 연출과 제작에 뛰어들었다. ‘피어린 구월산’(1965) ‘나운규 일생’(1966) ‘제3지대’(1968) 등 주연과 감독을 겸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았다. 하지만 잇단 흥행 부진으로 빚이 쌓이면서 69년 그를 보필해온 김지미와도 갈라서게 됐다. 그때 남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지금도 연속극 대사처럼 인용되곤 한다.

최무룡이 전처 강효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최민수도 배우의 길을 택했다. 강효실의 어머니 전옥씨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눈물의 여왕’으로 유명했던 전옥씨는 부산 피난 시절 대학생이던 내게 극단 활동을 권유해 생계를 도와준 은인이기도 하다. 성실한 나를 좋게 보셨는지 “내 딸과 결혼할 생각 없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이었지만 결혼을 생각하기엔 당시 나는 너무 어렸다.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힘든 때였다.

연기도 연기지만 최무룡은 노래 실력도 뛰어났다. ‘외나무다리’ ‘꿈은 사라지고’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 최민수도 99년 아버지 장례식에서 직접 영정을 들며 오랜 상처를 닦아냈다. 아버지를 뛰어넘는 훌륭한 배우로 남아주길 바란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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