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3)|내가 아는 박헌영(172)-박헌영계 숙청
이승엽「그룹」에 대한 재판은 1953년 8월 3일에서 6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었었다. 재판장은 김인선이며 담당판사는 방용숙·박영호였다. 검사 측은 명사부총장 김동학이 참가하였으며
-
(850)|내가 아는 박헌영(169)-장병민 설득 실패
내가 서울지하당시대 최후까지 체포되지 않고 무사히 지내왔다는 것이 의외로 나를 괴롭히게 하였다. 나의 고향 경남의 속담에 나무재주 잘하는 놈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물 재주 잘하
-
(837)|내가 아는 박헌영(156)|박갑동
김일성은 이 사건을 뒤에 박헌영에게까지 둘러 씌웠다. 북한의 재판기록에는 제1권 154∼155「페이지」이승엽이 이렇게 자백하였다고 쓰고 있다.『나는 1950년 7월 하순께 안영달
-
(818)내가 아는 박헌영(136)|박갑동(제자 박갑동)
무력준비에 나선 북한은 1949년 7월에는 「조국보위후원회」(군사후원회)를 면·이 등 행정단위의 말단까지 조직하고 민간에서 비행기와 전차를 구입, 헌납하는 운동을 일으켜 군비확장
-
(813)내가 아는 박헌영
이논진부의 고민 정태식과 김삼룡과 나와 세사람이 인적기가없는 캄캄한 서울운동장뒷길을 걸어가며 밀담을 하고 있을때 우리앞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몇걸음
-
(498)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사계 여록(125)|양유찬
5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아이젠하워」장군은 한국전의 종결이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였다. 나의 외교관 생활 20년중 이때처럼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 되도록 빨리 휴전을 성
-
(316)하늘의 전쟁(7)
(1) 조종사와 정비사는 바늘에 실이 따르듯 부부와 같은 일련돈생의 관계. 전자가 양지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는 것은 그 뒤 응달에서 묵묵히 정비에 피땀을 흘리는 후자의 각고가 있기
-
(305) 휴선 회담의 개막 (19)|시험 휴전의 내막 (2)
1951년11월27일부터 12월27일의 이른바 한달 동안 시험 휴전기간에 공산 측은 세계 이목을 가리기 위해 휴전 회담에 성의가 있는 듯 서둘러댔다. 11월26일에 쌍방 수석 대표
-
(301)휴전회담의 개막(15)
공산측은 8월22일 밤중에 미 공군기가 개성회의장의 중립지대를 폭격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결과 이는 전혀 허위날조임이 드러났다. 그들은 밤중에 급히 공동조사를 요구하여 급조증거물을
-
(282)적의 춘계공세(11)
(8) 우리 나라의 참 모습을 널리 해외에 알리는데 있어 백명의 대사보다 더 많은 몫을 했다는「리를·에인절즈」는 기실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현리전투에서 탄생했다. 전쟁에서 몇
-
(307)정중여산-무겁고 조용하기 산과 같이 하라
11월27일부터 12월4일에 이르는 8일동안 중서부전선에서는 창군이래 최대의 동계기동훈련 『승진 71호 작전』이 전개되었다. 이 『승진 71호 작전』은 제○군단장 이병형 육군중장
-
(239)유엔군의 총퇴각(12)
「리지궤이」장군은 미8군사령관에 취임하는 대로 「유엔」군의 후퇴를 중지시키고 부분적이나마 공세를 재개하려고 생각했다. 이점은 그가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에도 다짐한바 있다.
-
루마니아 침공 때 중공군지원 약속
【빈25일AP동화】「루마니아」를 방문중인 중공군사사절단단장「리·테·쳉」은 25일「루마니아」가 만일『제국주의의 무력침공위협을 받을 때는 중공군이「루마니아」의 편을 들겠다』고 말했다.
-
(212)남과 북의 포로수용소(4)
(4) 괴뢰 4인조장교들은 「딘」 소장이 감시병의 따발총을 뺏어 김 총좌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려고 하자 장군에 대한 심문과 고문을 중지한다. 「딘」소장의 이와 같은 마지막 시도는
-
(210)|「딘」 소장의 고난 (2)|남과 북의 포로 수용소(2)|「6·25」21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북괴는 「딘」 소장을 평양 북방의 순안으로 연행, 독립 가옥에 격리 수용해 놓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서운 고문을 가한다. 김 총좌를 우두머리로 하는 4명의 괴뢰 장교들은 「딘」소장
-
(208)중공군 개입(7)|맥아더의 오산(하)
맥아더, 청천강에 비래 「맥아더」 원수는 11월24일 「유엔」군에 대공세를 명령했다. 이날 원수는 동경으로부터 각 삼모와 기자들을 데리고 청천강변의 미8군 전방사령부로 비래하여 몸
-
로저즈 장군의 대 북괴 제의
지난 1년 동안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측 수석대표로 재임했던 「필릭스·M·로저즈」미 공군소장은 28일 귀국에 앞서 성조지 기자 「짐·프릴랜드」상사와의 「인터뷰」에서 한반
-
기밀 감싸는 닉슨의 배율
【워싱턴 23일 AP동화】20년 전 「캘리포니아」주 출신 상원의원이었던 「닉슨」씨는 「트루먼」행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기밀문서들을 지나치게 감싸고 있다고 비난, 『기밀문서의 분류는
-
예비군 폐지론 철회 촉구|정 국방 회견 북괴 남침 유발할지도
정래혁 국방부장관은 4일 상오 신민당의 김대중 대통령후보가 예비군 폐지론을 들고 나옴으로써『국민과 향군을 선동·오도하여 향군의 조직과 운영을 교란·마비시켜 국가존립에 중대위협을 주
-
(101)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6·25 동란당시 주일대표부 참사관으로 있던「지미·김」(길준)은「딘」소장의 요망으로 미군 제24사단과 함께 대전전선으로 달려갔다가 부상을 당하고「딘」소장도 행방불명이 되어 사태는
-
미군 철수론 대책 필요
국회 국방위는 16일 정래혁 국방장관과 윤석헌 외무차관을 출석시켜 주한 미군 감축설의 진상과 정부대책을 물었다. 야당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는 미 상원의 조셉·D·타
-
굳어진 모의인맥|중공9전대회
오랫동안 진통을겪던 중국공산당 제9차전당대회가 최근의 소-중공접경의 「우수리」강의 「다만스키」섬(중공명=진보도)에서의 두나라의 충돌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지난1일 마침내 막을 올렸다
-
짙은 반목 북평 하노이|런던·타임즈 본사독점 전재
1949년 중공은 소련의 좋은 협력자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었으나 오늘날 중·소 분쟁을 논하는 역사가들은 이와 같은 것을 양국간의 관계를 오해한데 기인한 것으로 보고있다. 1950년
-
군과 악수한 중공문혁
【뉴요크 AP동화=본사특약】중공을 소용돌이속에 몰아넣었던 2년여에 걸친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이 전격적으로 끝날것같지는 않지만,이제 중공의 군부가 이거대한 국가의정치미래에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