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제스 “린뱌오 끝까지 추적해라” 미군 수송기 행적에 촉각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64〉 태평양전쟁 기간, 버마 파견군 시절의 두위밍(오른쪽 첫째). 왼쪽 첫째는 윈난성 주석 룽윈. [사진 김명호] 중·일 전
-
룽윈 “소련에 등 떠밀리면 안 돼” 중공군 6·25 참전 반대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6〉 1956년 봄, 상하이에서 열린 사회주의 개조 승리를 기념하는 군중대회. [사진 김명호] 1950년 1월 18일 새벽,
-
신중국 선포한 마오쩌둥, 룽윈에게 ‘속 빈 강정’ 자리 줘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5〉 1954년 동북군구가 배포한 50군의 북한철도 복구작업 사진. 합성 흔적이 역력하다. [사진 김명호] 1945년 8월
-
장제스, 룽윈·저우언라이 만나자 중공과 내통 의심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4〉 국민당이 내전에서 패하자 시놀트는 귀국했다. 하원 청문회에 출석 해 국민당을 두둔했다. [사진 김명호] 충칭(重慶)의
-
룽윈의 윈난군, 장제스 그물망 벗어나 중공에 투항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3〉 충칭의 룽윈(오른쪽)과 장제스. [사진 김명호] 장제스(蔣介石·장개석)는 치밀했다. 윈난(雲南)왕 룽윈(龍雲·용운)을
-
룽윈 “장제스에 복종했는데, 미군과 이간질 상상 못 해”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2〉 난징 탈출 후 홍콩에 머무르던 룽윈(앞줄 왼쪽 둘째)은 대륙으로 돌아갔다. 1954년 5월, 정치협상회의 좌담회를 마친
-
장제스, 룽윈의 윈난 군·정 권력 박탈 위해 비밀공작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1〉 항일전쟁 기간 공군기지 건설에 동원된 윈난의 소수민족. [사진 김명호] 1959년 12월 4일, 중국최고인민법원이 특사
-
장제스, 국·공합작 항일전 승리 후 일등공신 룽윈 제거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70〉 항일전쟁 시절, 쿤밍의 야외행사 개막식장에 입장하는 룽윈(중앙). [사진 김명호] 1928년 윈난(雲南)을 통일한 룽윈
-
윈난 실권 쥔 룽윈, 장제스 중앙정부와 ‘줄타기 정치’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9〉 룽윈은 장제스의 항일을 적극 지지했다. 2000여 개의 사원에 야전병원을 설치했다. [사진 김명호] 1926년 7월 1
-
룽윈 배출한 윈난강무당, 청산리 영웅 이범석도 다녀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8〉 아들과 함께한 리페이롄(왼쪽)과 룽윈의 여동생. [사진 김명호] 옛날부터 윈난(雲南)인들은 무(武)를 숭상했다. 글(文
-
“룽윈은 평생 민주를 옹호, 독재에 굽히지 않았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67〉 중일전쟁 기간 윈난은 중국의 후방기지였다. 중국 전구(戰區) 사령관 장제스 영접하기 위해 쿤밍 공항에 나타난 룽윈. [
-
‘서북의 왕’ 후쭝난, 키 작아 황푸군관학교 쫓겨날 뻔
후쭝난이 20년간 따라다닌 예샤디(葉霞翟·왼쪽 첫째). 오른쪽 첫째는 전 주소련 대사 푸빙창(傅秉常). 1937년 칭다오(靑島). [사진 김명호] 수천 년간, 중국은 황제 밑에
-
[백가쟁명:강성현] 장제스 군대와 우리 군대를 되돌아보는 심정
로이드 E. 이스트만(Lloyd E. Eastman, 1929~1993)은,《파멸의 씨앗 ; 전쟁과 혁명 속의 국민당 지배 중국, 1937~1949(Seeds of Destruct
-
[Wide Shot] 1954년 9월 28일, 중국 국방위원회 창설 주역들
1990년대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온 중국은 이제 군사 분야에서도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G2(주요 2개국)로 부상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하고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대학은 큰 스승이 있는 곳
▲앞줄 왼쪽부터 판광단·뤄자룬(羅家倫)·메이타이치·펑여우란·주쯔칭(朱自淸). 김명호 제공 서남연합대학에는 총장이 없었다. 세 대학의 총장이 상임위원이었다. 베이징대와 난카이대 총
-
대학은 큰 스승이 있는 곳
앞줄 왼쪽부터 판광단·뤄자룬(羅家倫)·메이타이치·펑여우란·주쯔칭(朱自淸). 김명호 제공 서남연합대학에는 총장이 없었다. 세 대학의 총장이 상임위원이었다. 베이징대와 난카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