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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5. 중동 건설현장 2년
1979년 송년회 자리에서 한 곡조를 뽑는 필자. '서대문호텔'을 나온 것이 1974년 여름. 어머니는 내 친구 김도현군과 함께 두부를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이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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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4. 형무소 생활
1974년 형무소 수감 생활 직후 농장일을 재개했을 때의 필자(맨 오른쪽)와 마을 주민들. 거창한 간첩죄를 뒤집어 썼기 때문인지 1974년 수감 당시 나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깍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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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2. 간첩죄 구속
1974년 간첩죄로 구속된 필자의 감방 동료들은 이른바 '문인·지식인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소설가 이호철·임헌영씨 등이었다. 사진은 당시 사건을 다룬 중앙일보 지면. "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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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1. 노나메기농장 일
1974년 나이 마흔에 장가를 갔다. 사진은 농장 일을 하느라 검게 탄 얼굴로 치른 결혼식 피로연. "친구여, 어리석음이 더욱 커지기 전에 그대를 묶어놓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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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40. 노나메기농장 일
농장 개간 이듬해에 태어난 첫 딸 방그레를 안고 있는 필자. 오른쪽은 아내다. "위 부동산은 증여자 최재돈의 소유인 바, 금반(이번) 방동규에 증여할 것을 확약하고, 수증여자(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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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9. 독지가 최재돈
농장 기증자 최재돈씨와 주고받은 문서. 10만 평 땅을 무상으로 증여한다는 점 등을 명시했다. 강원도 철원의 땅을 무상으로 희사했던 최재돈이란 분을 만난 것은 1972년 말 첫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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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8. 땅 10만 평
1973년 여름 노나메기농장 안 움막에서 필자의 일가 친척들이 작업 도중 짬을 내 한담을 나누고 있다. "일제 시절 울분이 치밀 때면 찾아간 곳이 평안도 용강군이었어요. 홍경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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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37. 구룡포 머슴 생활
구룡포 머슴 생활 1년 뒤 정착했던 철원 노나메기농장에서의 필자.(맨 오른쪽) 지금도 내 마음에는 심훈의'상록수'가 어른댄다. 19세기 덴마크 황무지를 개척했던 지도자 그룬드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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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9. 조부의 DNA
당대에 거부가 된 개성상인이었던 할아버지 방영식(左)씨와 할머니 박순창씨. 나는 석가모니.예수는 몰라도 유전자는 믿는다. 타고난 성정이 따로 있고, 그게 사람을 좌우한다고 믿는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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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8. 은인 선우휘
선우휘씨가 쓴 조선일보 1973년 5월 15일자 칼럼. 필자의 농장실험을 소개 했다. 선우휘를 처음 만난 것은 어제 말했듯이 술값을 얻어내려 그가 근무하는 조선일보 주필실을 들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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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7. 은인 선우휘
화가 우경희(左)씨와 자리를 함께 한 선우휘씨. 1966년 때모습이다. 내 삶의 은인 선우휘는 현실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줬다. 강원도 철원의 '노나메기 농장'에 그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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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6. 은인 선우휘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선우휘씨. 필자는 그와 16년 우정을 나눴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선우휘(1922~86)씨를 만난 것도 백기완 덕분이었다. 이 무식한 배추가 선우휘의 사랑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