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자본주의’는 갔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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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카지노 자본주의’ 때문에 자폐증에 걸렸다. 대안의 하나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주목할 때다.”

 골수 사회주의자의 자본주의 비판이 아니다. 황병태(77·사진) 전 주중대사가 미국식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를 향해 날린 직격탄이다. 연내 출간 예정인 저서 『자본주의 경제학과 자본주의 경제(부제 ‘과거, 현재, 미래’)』에서다. 팔순을 바라보는 황 전 대사는 원래 경제기획원 국장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하버드대 대학원(행정학)을 거쳐,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한국외대 총장과 국회의원(재선)을 지냈다.

수교 이듬해인 1993년 6월부터 3년 간 주중대사를 지낸 그에게 장쩌민(江澤民) 중국 전 국가주석은 ‘영원한 주중대사’라고 지칭했다. 그 정도로 한·중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는 얘기다. 황 전 대사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그만의 시각이 담긴 ‘중국’ 얘기를 했다. 그는 “덩샤오핑(鄧小平)은 생전 장남 덩푸팡(鄧樸方)에게 ‘농민을 희생시키지 않고 수출산업을 주도한 박정희를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 내려는 책이 미국식 자본주의 비판 서적 같은데.

 “자본주의는 200여 년 역사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던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했다. 그러나 40년 간 시카고학파는 수학·통계학 모델에 빠져 위험회피와 수익률 올리기에만 집착했다. 사회과학이었던 경제학이 금융공학과 자연과학처럼 변질되면서 사회 현안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경제의 금융화로 인해 경제학과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다. 지금 경제학은 할 말이 없다.”

 - 글로벌화엔 긍정적인 면도 있는데.

 “글로벌화가 세계경제를 망쳤다. 월가(미 뉴욕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주의), 국제통화기금(IMF), 미 재무부가 결탁한 것이 ‘워싱턴 컨센서스(Consensus)’다. 초국가적 자본주의, 투기적인 카지노 자본주의가 창궐하면서 나라마다 중산층이 무너졌고 사회불안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지게 했다. 글로벌화와 워싱턴 컨센서스의 결탁으로 세계경제의 불균형도 심화됐다.”

 - 그렇다면 해법은 뭔가.

 “경제학은 돈 버는 금융공학이 아니라 경제·사회 문제를 다루는 사회과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개별 국가의 사회안정을 위해서라도 경제는 글로벌 단위가 아닌 국가 단위로 굴러가야 한다.”

 - 중국을 주목한 이유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도 대안은 아니다.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중국식 사회주의시장경제, 즉 국가자본주의의 대안 가능성에 관심이 고조됐다. 중국은 공산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자본주의와 다름 없는 사회주의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는 덩샤오핑의 머리에서 나왔다.”

 - 개발독재로 역행하는 것 아닌가.

 “자본주의가 어려울 때 대안이 될 수 있다. 인도·브라질 같은 후발 개도국은 직접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 미·중 두 나라간 경쟁의 미래는.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없어 산업공동화가 심각하다. 금융자본을 산업자본으로 돌리지 못하면 미국은 중국에 못 당할 것이다.”

 -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면.

 “금융자본의 글로벌화를 억제해야 한다. 1985년 일본이 플라자 합의를 통해 금융개방을 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세계화를 먼저 한 일본이 죽 쑤고 있는데 남의 일이 아니다. 금융과 산업을 국가 단위에서 관리하는 중국 방식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 중국이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있다. 중국 내부의 문제도 많은데.

 “빈부격차와 정치 안정이란 큰 숙제가 있다. 곧 출범하는 시진핑(習近平) 시대에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성패가 판가름날 것이다. 계속 정치·경제 안정을 이룬다면 중국모델은 세계사에 남을 것이다.”

 - 차기 대통령에게 미·중과의 외교 전략을 조언한다면.

 “친미든 친중이든 국익·통일·번영이 중요하다. 특히 한·중 관계는 수교 20주년을 맞아 제2의 수교를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지엽적인 것에 흔들리지 말고 대한민국의 ‘몸통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중국이 김정은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도록 우리가 미국과 공조해 중국을 움직여야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북한이 먹고사는 일에 정신 없이 바쁘도록 만들면 도발은 꿈도 꾸지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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