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최종규감독 아름다운 퇴장

중앙일보

입력

'벤치의 신사' 프로농구 삼보의 최종규(55.사진) 감독이 4일 지휘봉을 놓았다.

앞으로 최감독이 다시 프로팀 사령탑을 맡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사실상 영원한 퇴진인 셈이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삼보를 맡을 때부터 최감독의 목표는 '헹가래' 가 아니었다. 당시 최감독은 취임사에서 멋지고 정정당당한 승부로 살벌한 약육강식의 농구 풍토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멀었다. 지난 시즌 삼보를 플레이오프에 올려놓고 '올해의 감독상' 을 수상해 소망의 일부를 이뤘지만 올 시즌 삼보의 부진은 최감독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최감독은 순진했다. 대우(현재 신세기) 감독 시절에는 매경기 심판과 갈등을 빚는 감독들의 자제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심판 수준 향상을 위해 모두가 꺼리는 심판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최감독은 "삼보가 7연패에 빠져 팀 분위기를 전환해야 하고 지도력도 한계에 도달했다" 고 사임의 변을 밝혔다. 그러나 진심이 통하지 않는 풍토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삼보 구단은 최감독에게 잔여 시즌을 맡기겠다는 방침을 정하고도 사퇴를 만류하지 못했다. '기술' 이 아닌 '소망' 의 한계 앞에서 고뇌하는 최감독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감독의 농구는 개성 강한 허재를 포용하고, 젊은 선수들을 다독이는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강한 '사랑의 농구' 였다. 삼보는 선수 구성에 결점이 많으면서도 언제나 만만찮은 상대로 꼽혔다.

최감독은 모든 허물을 자신에게 돌렸다. 심판.구단.선수들을 향해 한마디 할 만도 했으나 침묵했다. 그러나 "매사가 마음같지 않다" 는 짧은 한탄에는 농구를 향한 '신사의 환멸' 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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