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은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선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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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게 4.11 총선은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선거’였다. 박근혜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은 원톱으로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지난해 말 동시다발적인 악재로 당 지지율이 바닥으로 추락하자 전면에 등장한 그였다. 당을 맡은 뒤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 정강·정책 개정을 주도하며 총선의 밑그림을 그렸다. 선거운동 기간엔 전국을 누비며 ‘거대야당 견제론’ 등 핵심 메시지를 직접 전파했다. "19대 총선 성적표는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에 대한 중간평가"란 말은 그래서 나온다.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그는 보수층 결집에 성공했다는 평이다. 텃밭인 영남을 지켰을 뿐 아니라, 충청에서 지역 기반이 강한 자유선진당을 눌렀다. 보수성향 무소속 후보나 국민생각 등은 맥을 못 췄다. '야도(野都)'이던 강원 지역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새누리당이 그동안 승패 기준으로 제시해온 121석을 훌쩍 넘겼다는 점에서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121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 얻은 의석수다. 당시 박 위원장은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고, 유권자들에게 108배를 하면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해 고사 직전의 당을 구해냈다.

올 총선에서도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통령 측근 비리 등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노무현 탄핵 당시보다 안 좋은 상황" "100석도 건지기 쉽지 않다"는 비관론이 팽배했었다. 야권의 '정권 심판론'엔 "말 바꾸는 세력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다"는 '야당 심판론'으로 맞섰다. 민간인 사찰 문제에 대해선 “나도 피해자”라고 피해갔고, 김용민 막말 파문엔 “자라나는 애들이 뭘 보고 자라겠느냐”라며 공격의 전면에 섰다. 각종 이슈에 정면 대응하는 승부사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결국 바닥에서 출발해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어낸 박 위원장은 2004년 총선 때 못지 않은 '박근혜식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게다가 이번 총선은 박 위원장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합군을 사실상 혼자 상대하는 구도였다. 정수장학회 등에 대한 야권의 공격은 '대선 후보자 검증'을 방불케할 정도로 매세웠다. '낙동강 벨트'라는 한정된 지역을 공략하는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 투표 독려로 간접적인 야권 지원에 나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같은 대권주자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고문이 출마한 부산 사상은 이기기 어려우니 다른 지역에 집중하자"는 주변의 조언을 물리치고 부산을 5번이나 찾았다. 이번 총선이 8개월 뒤 치러지는 12월 대선의 전초전임을 고려한 행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선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민주통합당에 밀린 데 대한 비판이 박 위원장을 향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18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서울에서 이번엔 새누리당이 정반대로 민주당에게 밀렸다, 이게 비(非)박근혜 진영에겐 '박근혜 한계론'을 내세우며 공격할 빌미가 된 셈이다. 지지 기반의 지역적 한계가 대선 가도에서 언제든지 복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편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대구 달성군에서 투표를 한 뒤 상경, 방송3사 출구조사만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지켜본 뒤 자택에 머물렀다. 총선 이후 정국 구상에 들어갔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당내에선 박 위원장이 향후 치러질 전당대회 등을 전후로 당 전면에서 물러나 숨을 고른 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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