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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균등으로 안 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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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여야 정당이 내건 4·11 총선 공약 중 교육분야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고교 무상·의무교육과 대학 학비부담 완화는 새누리당·민주통합당 둘 다 약속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립, 국·공립대 연합체제(네트워크) 구축에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한목소리를 냈다. 비인가 대안학교와 초·중·고생 토요문화학교 지원(새누리당), 고교서열화 폐지·대학기회균형선발 확대(민주통합당), 대학입학자격고사 도입(통합진보당)도 눈에 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대학입학자격고사는 진보신당 공약집에도 들어있다.

 전반적으로 교육 기회균등 강화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물론 맞는 방향이긴 하다. 공통적으로 저소득·소외계층에 신경을 많이 썼고, 진보성향 정당일수록 내친김에 학제(學制)까지 매만져 평등이념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왠지 익숙한 레퍼토리다. 대학네트워크만 해도 노무현 정부 시절 나왔던 국립대 연합대학화(化)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이것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질까. 수많은 전문가가 머리 싸매고 만든 교육공약인 만큼 활자화된 문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너무 어려운 얘기는 지우고 이해당사자 표 깎아먹을 것들도 빼고 예산 투입 같은 달콤한 고명까지 얹자면 공약집만으로는 하고 싶은 얘기 다 못 하기 십상이다. 수면 아래에 엄청난 궁량이 도사리고 있다면 수십 년 전 대학에서 교육학 강의 몇 개 들은 게 전부인 나로서는 지청구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겠다.

 기회균등 강화만으로 교육문제를 풀기엔 한계가 뚜렷한 것 같아서 하는 걱정이다. 예를 들면 어떤 당 공약에는 ‘공교육 강화로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대학서열 완화로 능력사회를 열겠습니다’는 대목이 있다. ‘능력사회’가 혹시 능력주의(meritocracy, 실력주의·업적주의)가 통하는 사회를 말한다면 이의가 있다. 출신이나 가문이 아닌 자기 능력·업적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게 능력주의다. 1950년대에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제시한 용어다. 대한민국도 그동안 능력주의 사회였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럴 것이다. 문제는 능력주의의 대전제인 ‘교육기회 평등’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회가 평등하지 못하면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성이 약해지고, 더 많은 기회 덕분에 사회 상층부에 진입한 이들의 정당성이 줄어들며,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은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게 된다.

 미국에서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3월 7일자 에듀케이션 위크(Education Week)지가 빈부차에 따른 교육 격차를 다뤘다. 뉴욕 타임스 2월 9일자도 같은 주제를 자세히 거론했다. 두 매체는 공통적으로 스탠퍼드대 숀 리어던(사회학) 교수 등의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1960~2007년 사이에 흑인·백인 간 교육 격차는 줄어든 반면 고소득·저소득 계층 간 격차는 40%나 늘었다는 얘기다.

고소득층 자녀는 만 6세가 되기까지 교육기관·박물관 등 집 밖에서 ‘유익하게’ 보내는 시간이 저소득층 자녀보다 1300시간이나 더 많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두 그룹 자녀가 책 읽기에 쓴 시간은 400시간이나 차이 난다. 이 격차는 거의 메우기 힘들다. 미시간대 수잔 다이나스키 교수는 61~64년에 태어난 사람과 79~82년에 태어난 사람을 빈·부 그룹으로 나눠 대학 졸업률을 추적했다. 고소득층 자녀 중 6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3분의 1, 80년 전후해 태어난 이들은 절반 이상이 무사히 대학을 마쳤다. 그러나 저소득층 출신은 60년대 출생이 5%, 80년 전후 출생은 9%만이 대학졸업에 성공했다.

 리어던 교수 등이 연구내용을 정리해 펴낸 책 제목이 『Whither Opportunity?(기회는 어디로?)』다. 대한민국의 기회평등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리도 소득에 따라 학력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지 꽤 됐다. 서울대 신입생 중 부친 직업이 농·수·축산업인 비율은 98년 4.7%에서 지난해 1.7%로 줄었다. 농어촌특별전형이니 뭐니 나름대로 애를 썼는데도 그렇다. 대학 성적도 가계소득에 비례하고, 고소득 가구의 대졸자 취업률이 저소득 대졸자의 1.2배라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언론들이 ‘교육 사다리’를 복원하자며 특집기사를 싣는 것도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이클 영은 2001년 타계하기 전 ‘실력주의 타도’라는 논문을 썼다. 돈에 의해 좌우되는 실력주의가 또 다른 불평등 세습으로 흐르는 세태를 경고한 글이다. 그의 경고는 우리 사회에도 들어맞는다. 더 늦기 전에 보정(補正)작업에 나서야 한다. 기회평등 강화만으로 부족하다면 이제 ‘결과의 평등’에도 손댈 때가 됐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