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 끝이 배꼽·가슴까지 ... “그게 골프냐” 반대론 확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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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19면

요즘 가슴에 퍼터를 고정한 채 스트로크하는 브룸스틱 퍼터나 배꼽 주변에 고정시키는 벨리 퍼터 같은 롱 퍼터에 대해 말이 많다. 지난해 키건 브래들리(26·미국)가 사상 처음 롱 퍼터를 사용해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논쟁이 더 뜨거워졌다.지난 2월 PGA투어 노던 트러스트 오픈에서는 세 명의 선수가 연장전을 펼쳤는데 빌 하스(30·미국)가 롱 퍼터를 사용해 우승했다. 연장 승부를 펼쳤던 브래들리도 롱 퍼터를 썼고, 필 미켈슨(42·미국) 역시 한때 롱 퍼터를 사용했던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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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투어에 따르면 선수들의 20~25%가량이 롱 퍼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골프용품 업계는 2011년 롱 퍼터의 매출이 전년에 비해 4배 이상 신장했는데 특히 벨리 퍼터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남들보다 7인치 정도 짧아 장난감처럼 보이는 28.5인치(일반적인 퍼터 길이는 34~35인치)짜리 최단 퍼터를 사용하며 화제를 모았던 로버트 개리거스(35·미국)도 올해는 46인치 체스트 퍼터로 바꿨을 정도다.

롱 퍼터는 1965년 리처드 팜리가 ‘몸에 고정하는 퍼터’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며 태동했고, 필 로저스가 60년대 후반 투어 무대에서 이 벨리 퍼터를 사용한 적이 있다. 이후 80년대 들어 미국 NBC스포츠 해설위원 조니 밀러가 퍼팅 입스에서 벗어나고자 LA오픈에서 체스트 퍼터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의 유행은 폴 에이징어(52·미국·PGA투어 통산 12승)가 99년 벨리 퍼터를 사용하면서다.

암 투병 후 투어에 복귀한 에이징어는 기복이 심한 퍼팅을 하던 중 퍼트를 잘하는 선수들은 퍼터 샤프트의 끝이 스트로크 내내 배꼽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에이징어는 프로숍을 샅샅이 뒤져 한 상점에서 브룸스틱 퍼터 가운데 조금 짧게 만들어진 퍼터 하나를 발견했다. 매장 카펫 바닥에 설치된 홀을 향해 배꼽에 대고 스트로크를 해보았는데 놀랍게도 거의 모든 공이 홀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투어에 들고 나갔다고 한다.

그 결과 에이징어는 2000년 PGA투어 퍼팅 부문에서 한때 1위에 올랐고, 시즌 상금랭킹 4위의 성적을 거뒀다. 비제이 싱(피지·사진)은 2003년 벨리 퍼터로 PGA투어 4승을 했다. 롱 퍼터를 사용하는 하스는 지난해 페덱스컵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해 보너스 상금 1000만 달러(약 113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모두 롱 퍼터로 부활했거나 인생역전에 성공한 경우다.

이러다 보니 롱 퍼터는 ‘공공의 적’이 됐다. 반대론자들은 “최소한 골프게임의 전통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클럽의 한쪽 끝을 몸에 고정해 놓고 스트로크하는 롱 퍼터는 양손 스윙 클럽이 기본인 골프의 본질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타이거 우즈도 지난 2월 “퍼터는 가장 짧은 웨지보다 길어서는 안 된다”며 롱 퍼터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우즈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퍼팅 입스에 빠졌다고 해서 인위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것은 골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롱 퍼터를 사용해 72년 US아마추어챔피언십 우승을 한 비니 자일스는 “긴장과 불안은 경기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목발은 그렇지 않다. 롱 퍼터는 목발이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현재 골프규칙에는 ‘퍼터는 18인치보다 짧아서는 안 된다’고 하한선은 정해놓고 있지만 상한선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런데 최근 미국골프협회(USGA)와 왕립골프협회(R&A)가 공동으로 89년 롱 퍼터를 허용한 것에 대해 재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롱 퍼터를 허용한 결정이 골프를 이처럼 쉽게 만들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고, 분명 문제가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R&A 측의 반응은 이렇다. “아이들이 퍼팅을 배꼽에 대고 하는 것이라고 배운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퍼터를 배꼽에 대고 하는 것으로 여기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말은 마구간을 나가 버렸고 세상은 누가 그 문을 열었는지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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