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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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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박정희를 비롯한 5·16 주체 세력이 나세르의 이집트 혁명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똑같이 18년간 권좌를 지킨 두 사람의 길은 달랐다. 청년 장교 박정희는 나세르의 민족주의에 열광했지만, 대통령 박정희는 개방 경제의 길을 택했다. 한국은 박정희 재임 중 산업화를 거쳐 박정희 사후 8년 만에 민주화를 이뤄냈다.

 반면 이집트는 군부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경제개발도 한계에 봉착했다. 그러다 꼭 1년 전 타흐리르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 봉기로 무바라크의 30년 철권 통치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집트의 권력은 여전히 군부의 수중에 있고, 군정 종식을 외치는 시민들의 희생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면 군부와 이슬람 세력이 권력을 나눠 가질 것으로 보인다.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외친 국민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결과다. 경제 발전을 통한 시민사회의 성숙 없이는 다원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역사의 교훈이 카이로에서 반복되고 있다. 카이로의 봄은 안갯속으로 잠복해 버렸다. 1980년 서울의 봄처럼.

 정작 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오고 있다. 오는 4월 50년 만에 자유선거를 치르게 될 미얀마가 근원지다. 이 나라 역시 1962년 네윈의 쿠데타 이래 군사정권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집트 뺨칠 정도로 강고해 보이던 군부가 스스로 민주화 개혁에 나섰다. 반정부 인사 아웅산 수치 여사의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10년 전 미얀마 방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국립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던 대학생을 만났다. 그는 인터넷으로 외부 세계의 사이트에 접속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정부가 승인한 국내 사이트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접속을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제회의에서 만난 미얀마 기자에게 이런 얘길 들려줬더니 ‘웬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길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물론 미얀마 군부 지도자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개혁에 나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 물밑 설득과 회유, 개혁을 받아들일 경우의 반대급부에 대한 약속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1년 전 ‘카이로의 봄’을 전한 신문기사들을 들춰보니 “다음 차례는 북한이다”는 식의 희망 어린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낙관론은 온데간데없다. 북한에는 시민봉기를 일으킬 세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3대 세습 과정에서 목도했다. 그렇다면 이집트보다는 미얀마의 봄바람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위로부터의 개혁은 지도자가 마음만 고쳐먹는다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눈길이 미얀마 쪽으로 향하게 된다. 평양에도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