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웅산 테러범과 역사적 진실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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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미얀마에서 수감 중이던 북한의 아웅산 폭탄 테러범 강민철을 한국으로 송환하려다 햇볕정책 탓에 무산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국정원 1차장으로 강민철 접촉과 석방 교섭에 나섰던 라종일 전 주일대사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사실을 증언했다.▶<본지 7월 25일자 2면> 라 전 대사는 “1998년부터 미얀마 당국의 협조를 얻어 지속적으로 강민철을 면회했다”며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그의 송환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의 사례처럼 강민철을 한국으로 데려와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외면한 것은 역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큰 실책이다.

 강민철은 북한 지령에 따라 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를 방문하려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폭탄을 터뜨려 한국 고위 관료 등 21명을 숨지게 했다. 3명의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은 사살됐고, 또 한 명은 2년 뒤 교수형으로 숨졌다. 강민철은 25년간 복역하다 53세 때인 2008년 간질환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런 그를 한국으로 송환했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역사적 사료로서 갖는 그의 증언이다. 강민철은 아웅산 테러의 전모를 육성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정권의 정책적 득실(得失)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묻어버렸다. 라 전 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사람이면서도 “강민철을 석방시켜도 남북 관계나 햇볕정책에 대한 영향은 없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인도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는 분명 흉악한 테러리스트다. 동시에 분단 상황의 희생양이다. 이용한 뒤 용도폐기한 북(北), 북한 눈치를 본 남(南) 모두에게서 버림받았다. “한편으론 인권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론 분단의 피해자인 한 젊은이를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라 전 대사의 지적처럼 말이다.

 주미얀마 한국대사관 직원은 88년 강민철을 면회하면서 그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 기록이 어디엔가는 있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강민철의 증언과 송환 추진 경위 등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 한 인간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