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협 통합에 속썩이는 전산망

중앙일보

입력

오는 7월로 예정된 농.축협 중앙회 통합을 앞두고 이들의 전산망 통합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합에 반대하는 축협과 농림부간의 마찰이 계속되는 가운데 통합이 강행될 경우 사전준비 미비로 컴퓨터 가동중단에 따른 예금인출 정지사태마저 우려되고 있다.

자칫 지난 1998년 퇴출은행의 전산망 통합 당시와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농림부는 최근 축협중앙회에 전산망 통합을 위한 실사를 나갔지만 축협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실패한 데 이어 지난 주말까지 전산관련 기초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축협은 이를 거부했다.

농림부는 만일의 경우 공권력 투입 등을 통해서라도 전산망 자료를 확보하는 사태가 올 것에 대비, 이미 금융감독원에 동화은행 등 퇴출은행의 전산망 통합 시나리오 등 실전기법을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축협은 "전문성을 저해하는 농.축협 통합의 부당성을 가리기 위해 헌법소원을 낸 만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농협이 점령군처럼 축협을 흡수하려는 통합작업엔 협조할 수 없다" 며 반발하고 있다.

농림부는 당초 이달 중에 기초자료를 확보한 뒤 양측의 전산망 통합을 위한 기본작업에 들어가 전산센터와 사무자동화시스템을 통합하고 잠정통합시스템을 운영한 뒤 올 9월까지는 일선 농.축협 조합까지 통합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유니시스 시스템을 사용하는 농협과 IBM 시스템을 사용하는 축협의 전산망 기종 차이로 인해 비용만 해도 사상 최대 규모인 7백63억원이 소요되고 최소한 6~7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게다가 중앙회와 일선 조합이 별개의 업무시스템으로 구성돼 있어 전산망 통합은 은행합병 때보다 2배 이상의 개발인력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산망 통합과정에서 만약 인사.급여프로그램 등 주요 자료와 예금원장.백업프로그램 등이 담긴 전산원장이 파괴되거나 훼손될 경우 통합작업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금융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김성훈 장관 등 농림부 고위 간부들도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박현출 농림부 협동조합과장은 "신용사업 규모만 하더라도 농협이 52조원인데 비해 축협은 3조7천억원에 불과해 ''일선조합 수도 농협은 1천2백개에 달하지만 축협은 1백92개여서''통합비용을 따져보더라도 농협시스템으로 흡수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정남시 축협중앙회 상무는 "유니시스 시스템은 호환성이 적은 기종이어서 시중은행 중에서도 조흥은행만 사용하고 있다" 면서 "여타 금융기관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IBM기종으로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주장했다.

농.축협 전산망 통합은 단순한 컴퓨터 기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축.상호금융.공제사업 등 각종 금융상품 통합의 향배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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