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낸 이종왕 대검 중수부 기획관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이종왕(李鍾旺)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19일 “이제 내가(검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더 이상 없다”며 사직 의사를 분명히 했다.그는 지난 16일 사표를 낸 뒤 수뇌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흘째 출근하지 않았다.검찰측과 언론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등산을 하거나 가족들과 외출하며 지낸다고 했다.

-사의 표명이 아니라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인가.

“대검의 한 간부를 통해 지난 16일 지휘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수사과정에서 수뇌부와 갈등이 심했나.

“나는 이미 사인(私人)
이다.검찰을 떠난 상태에서 그런 것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시 복귀할 의사가 없나.

“공직자는 처신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내가 돌출행동한 것이 아니다.앞으로 검찰청에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은 지난 17일 李기획관이 사의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검찰총장께서 나를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그러나 내가 검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더 이상 없다.마음의 정리가 됐다.어쨌든 지휘부의 영(令)
을 거슬려 조직을 떠난 만큼 조직인으로서 복귀하는 것은 조직에도 부담을 주고 나쁜 선례가 된다.”

-지난 16일 박주선(朴柱宣)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소환 발표는 독자적인 행동이었나.

“당시 이미 사표를 제출한 상태였지만 이번 사건을 명백히 해두고 싶어서 발표했다.소환 방침은 중수부장의 허락을 받은 것이었다.”

李기획관은 경북 경산출신으로 경북고·서울법대를 졸업했으며,사시 17회에 합격했다.사시 16회에서 朴전비서관이 줄곧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고 질주했던 것과 같이 17회에선 李기획관이 단연 앞섰다.

평검사시절부터 진중(鎭重)
한 언행과 성실성,정확한 판단·기획력등을 인정받아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여주지청장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평소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대인관계가 좋아 대검 공보담당관을 지내기도 했고 이후 ‘검찰의 황태자’라는 법무부 검찰1과장을 진냈다.

서울지검 형사1부장·제주지검 차장을 거쳐 지난 6월 수사기획관에 임명됐다.특수수사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아 다소 의외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선배검사는 강원일(姜原一·파업유도 특별검사)
변호사라고 말하곤 했다.사석에서 “초임 검사시절 부장으로 모셨던 그분으로부터 검사로서 강직함과 고집을 배웠다”고 밝혔다.그래서 이번에 사표를 제출한 뒤에 姜변호사에게 심경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李기획관의 사표 제출에 대해 검찰 내부에선 “안타깝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사직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훌륭한 검사 1명이 조직을 떠나는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李기획관과 절친한 한 검찰간부는 “李기획관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합리적으로 판단하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황소고집도 저리 갈 정도”라며 “안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정욱 기자 <jw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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