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도 흉기도 두려워 않는 의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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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시민영웅’ 시상식이 2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득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시민영웅’ 이재원·남기형·박순동·엄태진·송형일씨, 아흐메드 에이 수베이 S-OIL 대표. [안성식 기자]


남기형(41)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회사 맞은 편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동료와 함께 소화기를 들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삽시간에 번져 접근할 수 없었다. 건물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살려달라”는 절규가 메아리쳤다. 잠시 뒤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소방관들은 불을 끄기 위한 사전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남씨는 직접 소방차에 다가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사다리차를 대 달라”고 요청했다. 그 와중에 연기는 점점 자욱해졌고 사람들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작은 창문에 얼굴만 들이밀고 있었다.

 사다리차에 뛰어올라 3층에 접근한 남씨는 들고 있던 소화기로 통유리창을 서너 차례 내리쳐 깨뜨렸다. 그러자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의 활약으로 6명이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남씨는 손가락 인대 파열 등으로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남씨는 “마지막 사람이 구출될 때까지 다친 손에서 피가 떨어지는 것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을 희생해 이웃을 도운 ‘작은 영웅’ 19명이 22일 오전 여의도 63빌딩 연회장에 모였다. 이들은 사회복지협의회가 주관한 ‘제3회 시민영웅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이 상은 보건복지부와 경찰청·S-OIL(에쓰오일)·중앙일보·KBS가 후원했다.

 경북 포항의 고 3년생인 양승훈·정형락·권영모 군은 4월 25일 오후 11시께 독서실 밖에서 쉬고 있던 중 “사람 살려,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는 달려갔다. 곧이어 후다닥 도망가는 남성을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했다. 발빠른 세 친구는 흉기를 들고 있던 장씨를 붙잡았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15분이나 몸싸움을 벌였다. 승훈 군은 “몸싸움을 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속상했다”고 말했다.

 용감한 고교생은 또 있었다. 김한슬(16 ·서울강동구)양은 지난 10월 2층 주택 창문에서 떨어질 듯 매달려있는 2살짜리 아이를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1.5m 높이의 철조망을 뛰어 넘어 추락하는 아이를 받아냈다. 김양은 “아직도 내가 그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몸을 움직였는지 모르겠다”며 밝게 웃었다. 인기그룹 SG워너비의 김진호(24)씨는 7월 서울 천호공원 부근에서 여성을 폭행한 뒤 가방을 빼앗아 도망치는 강도를 친구들과 함께 붙잡았다.

  S-OIL은 시민영웅 의사자 가족에게는 1500만원의 위로금을, 시민영웅 의상자에게는 1000만원의 상금을 각각 지급했다.

글=홍혜현 객원기자(KAIST 교수)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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