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지도로 첫 연주회 치른 ‘우리동네오케스트라’ 7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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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과 첼로를 든 꼬마 음악가들이 무대에 올랐다. 지휘자의 손짓에 28개의 활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바흐의 ‘미뉴에트’ 선율이 흘러나왔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30분 초등 3학년 어린이들로 구성된 ‘우리동네오케스트라’가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 무대에 섰다.

글=설승은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활 잡는 법도 몰랐던 아이들은 7달여 동안의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연주 실력이 부쩍 늘었다. 성격도 밝고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황정옥 기자]

연주는 하이든의 ‘놀람교향곡’,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 모차르트의 ‘장난감 교향곡’으로 이어졌다. 우리동네오케스트라 김영훈 음악감독은 리듬에 맞춰 등을 활처럼 구부렸다 펴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익살스레 지휘를 이어갔다.

 우리동네오케스트라가 처음 만들어진 건 올 5월. 단원은 서울 구로구에 사는 초등 3학년생이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아이들이다. 서울시와 구로구가 단원들에게 악기를 제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음악교육을 한다. 모두 무료다.

 이날 무대에서 멋진 연주를 펼친 단원들은 오케스트라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바이올린과 첼로를 접해보지 못했다. 이들은 연주회를 열기까지 7개월여 동안 5개 반으로 나뉘어 일주일에 3차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연습했다. 금요일엔 단원 모두가 모여 합주를 했다. 지도는 서울시향이 맡았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15년차 서울시향 단원 5명이 아이들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서광욱씨는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기 4개월 전부터 아동심리 연수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음악교육 통해 밝고 긍정적으로 태도 변해가

5월 창단된 우리동네오케스트라가 11월 30일 첫 연주회를 했다. 초등학생들의 활 놀리는 솜씨가 제법이다.

아이들의 악기 연주 실력만 변한 것이 아니다. 타인을 경계하거나 열등감에 젖어있던 아이들은 밝고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김 감독은 “부모의 이혼과 경제 형편 등으로 주눅들고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던 아이들이 음악을 만나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무대 오른편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김민서(서울 세곡초 3)군은 처음 오케스트라에 들어왔을 때만해도 친구들을 때리고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우리동네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이젠 ‘대표 배려쟁이’로 통한다. 연습에 늦는 친구들을 위해 그들의 악기와 악보도 미리 꺼내둘 정도다. 지도교사로부터 “다른 친구들 배려 안 할 거면 첼로도 하지마”란 말을 들은 것이 계기였다. “더 이상 첼로를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어요. 오케스트라에 들어온 이후 첼로를 정말 좋아하게 됐거든요. 이젠 다들 저보고 의젓해졌대요.” 이날도 김군 주변엔 김군을 응원 나온 친구들로 북적댔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소극적이고 말이 없던 전채린(서울 고척초 3)양의 입도 열었다. 전양은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늘 주눅든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집에 가곤 했다. 그러나 이젠 서울시향 단원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장난을 친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을 받은 덕이다.

 “평소 딸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레슨은 엄두도 못 냈죠. 원하던 악기를 배운 뒤 부쩍 밝아진 아이 모습에 제가 더 행복합니다.” 딸(임기령·구로남초 3)의 연주를 지켜보던 최유경(42·여·서울 구로3동)씨의 말이다.

 이날 모차르트의 ‘장난감교향곡’ 연주 땐 이들의 ‘선생님’인 서울시향 단원들도 무대에 올랐다. 그러고는 곡에 등장하는 장난감 악기 부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는 제자들 틈에서 플라스틱 나팔을 불었다. 딸랑이를 흔들기도 하고, 뻐꾸기와 메추라기 소리도 냈다. ‘우리동네오케스트라’란 이름으로 하나가 돼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냈다.

 “그동안 저희를 믿고 아이들을 보내주신 부모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준비한 연주가 모두 끝나자 김 감독이 객석에 앉은 단원 부모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우리동네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일제히 활을 높이 들었다. “I Can Do It(나는 할 수 있다).” 희망의 메아리가 극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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