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힌 외환 정책] 上. 적정 외환 보유액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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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외환보유액은 과연 얼마일까.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국가는 일정 규모의 외환이 있어야 한다. 보유액이 많으면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작정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관리 비용이 증가하는 데다 환율이 급락하면 평가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선 3개월 동안 수입한 금액을 적정 외환보유액의 기준으로 제시했었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해외에서 사와야 할 대금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지난해 국제수지상으로 3개월치 수입대금은 평균 550억달러였다. 현재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의 25%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국가 간 자본 거래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에 적당했다.

한국은행 국제기획팀 관계자는 "외채와 자본투자 쪽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시적으로 돈이 빠져나갈 경우에 대비해 앞으로 1년 안에 갚아야 할 외채(732억달러)와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잔액 기준)의 3분의 1(571억달러.1월 말 현재)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3개월치 수입대금을 포함해 3개 항목을 더하면 적정 외환 보유액은 1853억달러가 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현재 외환보유액이 많지 않은 셈이다. 한은 박승 총재는 지난 24일 국회에서 "현재 외환보유액은 적정 규모 언저리"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뜻하지 않은 경제위기나 통일비용 등이 발생할 경우를 가정해 외환보유액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외환보유액이 적정 규모를 초과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대경제연구원 노진호 연구위원은 "세계적 기업들이 많고 수출 잠재력이 큰 한국에서 국제자본이 섣불리 빠져나가진 않을 것"이라며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기준에서 빼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은 1200억달러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서강대 정재식(경제학) 교수는 "적정 외환보유액의 정답은 없으며 나라마다 다른 외환수급 상황, 환율제도, 자본시장 개방 정도, 외환보유 비용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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