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환율 전쟁, 체질 개선 계기로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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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내수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려 해도 재정적자 때문에 여의치 않다. 회복세를 이어가려면 수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제품·서비스 경쟁력을 갑자기 높일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통화가치 절하를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2015년까지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 아래 유동성을 풀어 달러화 약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 정부에 위안화의 대폭 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반면 중국은 이러한 요구에 과도한 위안화 절상은 중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본도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 EU의 강력한 비난을 받는 등 거대 경제권 간 환율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출 호조로 무역수지 흑자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의 주식·채권 투자 자금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환율 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루어질 전망이다.

현 시점에서 이번 환율 전쟁이 심각한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각국의 의견 대립이 첨예해 환율 갈등이 단기간에 해결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업 경영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 당장 모든 수출입 물량을 환헤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내년 사업계획을 짜는 것도 여의치 않다.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환율이 언제까지 얼마나 떨어질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43.4%를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환율 하락은 수출 감소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정유·철강산업과, 항공기 구입 등 외화부채 비중이 높은 항공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수출 비중이 60~80%에 달하는 반도체, LCD, 자동차산업의 경우 큰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연간 200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504개 수출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50~1100원으로 떨어지면 수출기업의 75.4%가 수출 마진을 확보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환율 하락 속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환율 하락이 문제되는 것은 그 수준 자체보다도 ‘속도’ 때문이다. 정부는 외환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환율의 안정에 노력해 주어야 할 것이다. 기준금리 결정 문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글로벌 유동성이 많은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해 추가적인 환율 하락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기업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외환 전문인력 확보, 결제통화 다변화, 환헤지 등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서 환율 변동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원가 절감, 생산성 증대, 물류·구매 효율화 등 체질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번 환율전쟁을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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