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토크] 짝퉁 소비자를 홀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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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명품업체들은 짝퉁 소비자를 홀대하면 안 된다. 그들만큼 분명한 잠재고객도 없기 때문이다. 장사의 기본은 기존 고객을 관리하면서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미래의 소비자로 대해야 한다. 그런데도 명품업체들은 마치 그들을 적으로 여긴다.

그들이 짝퉁을 사는 건 진짜 제품을 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언젠가 꼭 진짜 명품을 하나 구입하리라 다짐한다. 다짐이 다짐으로만 끝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마음을 헤어린다면 섭섭하게 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기업이라면 미래의 고객, 잠재고객만큼 중요시해야 할 단어도 없다. 어느날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이 원하던 브랜드의 그 제품이라면 하늘로 날아오를 듯 좋아할 사람들이다. 평소 그 브랜드를 잘 알고, 갖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단골만 대상으로 장사한다 해도 이런 고객을 우습게 여기면 물건 파는 사람의 기본이 안 된 경우다.

사실 어떤 명품회사 직원이 이런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시장의 짝퉁 제품도 어느 정도는 관리한다는 것이다. 남대문시장이나 이태원에 가서 자기 브랜드의 짝퉁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가끔씩 살핀다는 것이다. 매대를 서성이며 가격은 어느 수준이고, 사람들이 어떤 아이템에 관심을 많이 갖는지 체크한다고 했다. 모조품이라도 자기 브랜드가 진열대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 상점 주인이나 매니저에게 은근히 한마디 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뜸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도난 자동차 랭킹'이 생각난다. 미국은 자동차 왕국이다. 한 해 팔리는 차(중고차 제외)가 1600만대에 이른다. 이 나라에서는 좋은 차 또는 인기 차의 별난 기준이 있다. 얼마나 도둑들의 표적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도난 자동차 랭킹'이 큰 관심을 끈다. 차 도둑들은 대중적인 차 가운데 중고차 시세, 다시 말해 리세일 밸류가 좋은 차를 표적으로 삼는다. 그래야 좋은 값에 쉽게 팔어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리스트에서는 도요타의 캠리와 혼다의 어코드가 늘 상단을 차지한다. 최근 인기가 크게 높아진 현대차도 앞으로 랭킹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런 발표가 나오면 자동차 회사들은 잠금장치를 더 강화해 소비자 피해를 줄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느 정도 즐기는 면이 있다. 시장에서 그만큼 인기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이커에 대한 비난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어떻게 만들어도 차 도둑들을 당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해가 있는 것이다. 명품업계의 짝퉁에도 비슷한 요소가 있다. 작퉁이 많다는 건 가짜라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린 모조품을 사는 사람을 욕하는 게 아니라 그걸 만드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겁니다." 명품업체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지 모른다.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찾는 사람이 있기에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니 판매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그걸 사는 이들은 진품을 살 형편이 안 될 뿐 그 브랜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들이 홍보대사로 나서주면 고마운 일이다. 3초 백이란 말이 있다. 다운타운 번화가에서 특정 브랜드 가방이 3초에 하나씩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정 제품이랄 것도 없다. 루이뷔통의 스피디 가방을 일컫는 말이다. 스피디는 25,30,35,40 네 종류가 있는데, 수자는 가방의 가로 사이즈(cm)를 뜻한다. 구찌는 5초 백, 에트로는 7초 백으로 불린다. 전문직 남성들이 애호한다는 투미는 월가의 5초 백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말의 진원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업체 쪽에서 만들어 퍼뜨렸다고도 한다. 3초니 5초니 하는 말은 과장된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해도 그들 중 진짜 가방을 든 사람은 얼마나 될까. 3초 백이라는 최고의 마케팅 수식어가 붙을 때까지 짝퉁 소비자들도 상당히 기여하지 않았을까.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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