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곳에 써달라" 얼굴 감춘 천사들:돼지저금통 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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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굴 없는 온정의 손길이 꽁꽁 얼어붙은 세밑을 녹이고 있다.전북 전주시내 한 동사무소에는 3년째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돼지저금통을 몰래 놓고 가는 사람이 있다. 또 한 산골 축산농부는 자신이 길러온 돼지를 불우이웃을 위해 선뜻 내놓았다.

지난 24일 오후 2시30분쯤 전주시 완산구 중노2동 동사무소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60대로 추정되는 이 남자는 "동사무소 옆 공중전화 부스에 돼지저금통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공중전화 부스에 가보니 정말 돼지저금통 한개가 놓여 있었다.

저금통에는 1만원권·1천원권 등 지폐 1백만원과 동전 61만2천60원 등 1백60여만원이 들어 있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도 같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같은 방법으로 1백만원이 든 저금통을 공중전화 부스에 놓고 갔었다.

2000년 12월 말 열살 안팎의 어린이가 80만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동사무소 민원창구에 놓고 자취를 감췄었고, 지난해 연말에도 1백만원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을 한 주민이 동사무소에 놓고 사라졌었다.

동사무소 측은 매년 이 돈으로 관내에 혼자 사는 노인·소년소녀 가장 등에게 난방비 등 생활비로 지원하고 있다.

천창신(千昌信·58)동장은 "보이지 않는 독지가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매번 허사였다"며 "한 가족이 불우이웃을 위해 일년 동안 모은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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