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카 대신 낙하산 메고 뛰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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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하톨 모하마드 자이(44·사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붉은 베레모를 쓰고 군복을 입고 다니는 유일한 여성이다.

과거엔 그녀가 부르카(현지 이슬람 여성의 온 몸을 가리는 천)를 걸치지 않고 다니면 "여자가 왜 부르카를 입지 않느냐"는 야유가 쏟아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오히려 "독립기념일에 낙하산을 탄 바로 그 여자"라는 호기심 어린 탄성이 나온다. 그녀는 지난 8월 19일 수도 카불의 독립기념 축하식장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뭇 남성들을 놀라게 하면서 일약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1980년 카불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공군에 자원 입대했다. 낙하산을 타고 싶다는 어릴 때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85년엔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는 최초로 낙하산 하강을 했다.

하지만 96년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탈레반이 집권한 뒤에는 군에서 쫓겨나 시장바닥에서 담요와 수공예품을 팔며 연명해야 했다.

남편은 내전 중 숨졌고, 아이들 넷을 굶기지 않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던 시절이었다. 자이는 "탈레반이 집권하자마자 '여성들은 일터로 나오지 말라'는 라디오 방송이 있었고, 여자들은 학교에서도 쫓겨났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탈레반이 축출된 뒤 올해 초 공군에 대령 계급장을 달고 복귀한데 이어 지난 4월엔 꿈에 그리던 준장으로 진급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국민군 창설을 위해 그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AP통신은 6일 "자이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군 장성"이라고 보도했다.

강홍준 기자

kang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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