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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 정권의 대미 궁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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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다른 법이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을 보면 이미 환상은 깨지고 있다. 철밥통 관료들의 저항은 거세다. 이들을 다뤄본 적이 없는 민주당의 실수도 잇따르고 있다. 간 나오토 총리가 지난 6월 갑자기 소비세를 올리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비틀거리는 것은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일본 민주주의의 한계 때문이다. 지난해 막을 내린 보수 자민당의 독주 체제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산물이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 정치인들은 수십 년간 일본의 정치를 주물렀고, 좌파들은 정권을 잡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심지어 전범들도 미국의 충실한 동맹자로서 공산주의에 맞섰고, 이들 중에는 훗날 총리가 된 사람도 등장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다는 원죄 때문에 공식적으론 군대 보유가 금지돼 있다.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이 일본에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을 만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한 일본엔 주권이 없는 셈이다.

이 덕분에 일본은 경제 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이 일본의 안전보장을 책임져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모두를 만족시켰다. 일본은 부자가 되고 미국은 말 잘 듣는 반공 국가를 갖게 됐다. 중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을 걱정하지 않게 돼 팍스 아메리카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그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됐다. 외부 세력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관료들에게 정책을 떠맡겼던 자민당 독주 체제의 민주주의는 한계를 드러냈다. 종전 65년이 지나면서 세계도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중국이 거대한 힘을 갖게 됐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일본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우선 일본이 중국의 힘을 막아내는 유일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러려면 기존 체제로는 적합하지 않다. 민주당은 이런 필요성을 인식해 일본이 훨씬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미국에 순종적으로 보호받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동등한 동맹을 추구하려고 했다. 그 첫걸음이 미군 주둔의 부담을 떠안았던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대를 내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은 민주당 정책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국은 까다롭고 민주적인 파트너보다는 말 잘 듣는 과거 자민당 체제를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일본의 새 정권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진정으로 국제 사회의 자유 촉진에 관심이 있다면 일본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 칼리지 교수
정리=김동호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