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3인방’ 모태범·이상화·이승훈의 여름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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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엔 빙상장도 더워요.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죠.” 바깥 기온은 섭씨 32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오후 2시의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오륜관. 한 무리의 빙속 선수들이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숨이 턱에 차는데도 감독은 “스피드 더 올려, 더” 하며 소리를 지른다. 땀 때문에 셔츠가 엉겨붙자 선수들은 윗옷을 벗어던지고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빙속 선수들에게 8월은 가장 혹독한 시기다. 여름에 땀 흘리지 않으면 겨울의 영광은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진은 4일 오후 훈련 도중 태릉선수촌 옆 푸른동산 계곡에서 포즈를 취한 ‘빙속 3인방’. 왼쪽부터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선수. [이호형 기자]

◆여름 강훈련이 겨울 성적을 보장한다=빙속 선수들에게 8월은 가장 혹독한 시기다. 지금 땀 흘리지 않으면 겨울의 영광은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표팀 윤의중 감독은 “동계 시즌 성적은 여름 훈련에 달렸다. 그래서 한여름에는 우리 선수들이 하계 종목 선수들보다 훨씬 더 힘들게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인 ‘빙속 3총사’ 모태범·이상화·이승훈(21·이상 한체대)도 요즘 훈련에 한창이다. 모태범과 이상화는 태릉선수촌에서, 이승훈은 모교인 한국체대에서 각각 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윤 감독은 “빙속 선수들은 새벽·오후·저녁 이렇게 하루 세 차례 훈련을 한다. 지금 훈련 강도가 최고조”라고 귀띔했다. 모태범은 “여름 훈련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도로사이클 80㎞다. 아침에 다 함께 차를 타고 포천 베어스타운으로 가서 3~4시간 동안 전속으로 도로를 왕복한다. 사이클 훈련이 끝나면 온몸의 힘이 쭉 빠진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승훈은 “여름엔 빙상장 내부도 덥다. 겨울에 그렇게 춥던 빙상장이 후끈하다. 땀이 빙판 위로 뚝뚝 떨어진다”고 거들었다. 이상화는 “차라리 스케이트 훈련을 하는 겨울이 훨씬 편하다. 체력 훈련이 너무 고돼서 하루 빨리 전지훈련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모태범은 지난 5월 홀로 훈련하다가 사타구니 부상을 입어 현재 재활에 힘쓰고 있다. 이상화도 2일 쇼트트랙 훈련 중 무릎을 다쳤다. 둘은 “여름 훈련은 강도가 세기 때문에 다치기 일쑤다. 하지만 금방 또 제자리로 돌아오니까 걱정할 것도 없다”고 했다.

4일 훈련이 끝나고 빙속팀은 4박5일간 여름 휴가를 간다. 모태범은 “올여름은 휴가 기간에도 체력 훈련에 힘써야 한다. 부상 때문에 훈련을 오래 쉬어 남들 놀 때 함께 놀면 안 된다”며 “어차피 휴가 가서 놀아봤자 다 쓸데없다. 운동하는 게 남는 것”이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올림픽 후유증’은 없다=올 시즌 ‘빙속 3총사’에게 가장 큰 목표는 내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겨울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이번 대회에서 빙속 종목은 500m와 1500m, 5000m, 1만m, 팀 추월, 70바퀴 릴레이를 치른다. 국가별로 종목당 2명씩의 엔트리만 허용하기에 경쟁도 치열하다. 이승훈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나는 5000m와 1만m, 그리고 단체 두 종목에 출전할 계획이다. 쇼트트랙에도 출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아직 판단을 확실히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태범은 “(이)강석이 형, (이)규혁이 형, (문)준이랑 500m와 1500m가 겹친다. 2명 안에 들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운동 선수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 너무 일찍 목표를 이룬 이들에게 상실감은 없을까. 모태범은 “앞으로 이룰 목표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올림픽 금메달로 자만하면 안 되죠”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이승훈은 “난 당장 눈앞에도 목표가 있다. 월드컵 1차 대회가 네덜란드에서 열리는데, 올림픽에서 레인을 잘못 타 실격당한 스벤 크리머를 만난다. 크리머의 홈에서, 이번에는 실력으로 크리머를 꼭 이겨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상화는 “올림픽 후 오히려 자신감이 커졌다. 그래서 올림픽 전보다 더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500m 금메달을 딴 뒤 환하게 웃고 싶다”고 했다.

글=온누리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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