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식사준비 "한달치를 하루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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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뉴저지주 패어로운에 사는 맞벌이 부부 존과 캐트리나 패러보는 매월 셋째 토요일을 '요리의 날'로 정했다. 네 자녀와 함께 요리 재료를 쌓아 놓고 한달 동안 먹을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날이다.

아침은 토스트나 시리얼로 때우면 되니까 특별히 준비할 게 없다. 점심도 부모들은 직장에서, 아이들은 학교급식으로 해결하므로 결국 저녁식사용으로 30끼 분량의 음식을 하루에 준비하는 셈이다.

패러보 부부는 지난 주말에도 아침 일찍부터 장을 보고, 오전 11시부터 6시간을 꼬박 부엌에서 법석을 떨며 15종의 음식을 마련했다. 참치·피자·스테이크·양파수프·파스타·라자냐 등이 주메뉴였다. 15종의 음식을 만든 것은 2주 단위로 메뉴가 돌아가도록 배려한 결과다. 패러보 부부 집의 냉동고를 열어 봤더니 음식들이 날짜에 맞춰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차곡차곡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직장의 서류함 같다는 느낌을 준다. "지난 연말 요리전문 케이블TV에서 한달치 음식을 하루에 장만하는 맞벌이 부부를 보고 따라 배웠다"는 것이 이들 부부가 전하는 '주말 가정요리' 입문 동기다. 미 신문들도 맞벌이 부부의 한달치 음식 장만 얘기를 자주 다룬다. '하루 고생으로 한달을 편안하게 살자'는 실리주의의 산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리도 좋지만 대신 잃는 것도 많아 보인다.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서로 음식을 권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살가운 풍경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점점 더 바쁘게 사는 대가로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됐지만 그에 비례해 인간다운 정은 점점 메말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의 많은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자라서 혹시 정성이 담긴 어머니의 손맛 대신 차가운 냉동고의 한기를 어릴 적 추억으로 간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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