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칠판도 책상도 없는 흙바닥 교실이지만… "공부 할 수 있어 정말 신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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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아침 8시,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어린 여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새처럼 재잘거리며 학교로 들어온다. 며칠 전까지 정부군이 병영으로 쓰던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건물이다. 탈레반이 여학교를 폐쇄하고 군인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아이들이 들어가 앉은 교실 벽은 갈라져 바깥이 훤히 보이고, 바닥은 그냥 흙이다. 책상도 걸상도 칠판도 없다. 교과서도 선생님 것 딱 한 권뿐이다. 그러나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눈부실 만큼 초롱초롱하다. 오늘은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이 여자 아이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날이다. 6년 만에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첫날이기 때문이다. 월드비전이 지원하고 있는 하피티 여학교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가 보았다.

"너 희들 학교에 오게 되어서 좋으니?" 내 뻔한 질문에 발디딜 틈도 없이 촘촘하게 앉아 있는 40여명의 아이들이 합창으로 대답한다."발레요."(물론이지요.)

"뭐가 좋으니?" 제일 앞줄에 앉은 꼬마가 자신있게 말한다. "글씨를 읽고 쓸 줄 알게 되니까요."

"그럼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할거니?" "발레요." 고개까지 동시에 옆으로 까딱하며 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안타깝게도 이 학교 학생 모두가 이렇게 첫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는 이 학교의 교실은 통틀어 19개, 콩나물 교실로 아침 반과 오후반, 2부제 수업을 해도 최대 수용 학생은 1천7백여명이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등록한 학생 수는 7천명. 부랴부랴 운동장에 30동의 텐트를 쳐 임시교실로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더구나 학생수가 매일 2백명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학교 마당에는 교실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아이들보다 몇 배로 많다.

여자 선생님도 턱없이 부족하다. 여학생은 반드시 여선생님이 가르쳐야 하는데, 하루 아침에 많은 여교사를 찾을 수가 없어 같은 학교의 고등학생이 선생님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이 반 선생님인 16세의 자아라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놀랍게도 영어를 아주 잘했다. 탈레반 때 몰래 개인교습을 받았다고 한다. 걸리면 학생과 선생 모두 며칠간 감옥에 가거나 길거리에서 매를 맞았다고 했다. 무섭지 않았느냐니까 갑자기 목청을 높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죠. 코란 어느 곳에도 여자들이 교육받아서는 안된다라는 말이 없어요."

자아라 반에는 16세인 수라야도 있다. 막내 동생 같은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기 부끄럽지 않으냐니까 너무나 행복하단다.

"탈레반 시절, 언니랑 지하학교에 다녔죠. 밤에 몰래 부르카 안에 책을 감추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들키고 말았어요. 우리를 가르치던 사촌오빠는 죽도록 맞아서 지금도 운신을 못합니다. 지금 이렇게 환한 대낮에 학교를 다닐 수 있다니 꿈만 같아요. 나는 약혼을 했는데 다행히 약혼자 집에서 학교를 다녀도 좋다고 허락했어요. 알라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탈레반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탈레반 시절 학교에 갈 수 있었던 남자 아이들도 새학기를 기뻐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까지는 전부 코란에 관한 과목만 배웠는데 지금은 수학에 미술까지 공부해서 참 좋단다. 영어와 컴퓨터도 배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문맹률은 60%, 그중 여자는 90%에 이른다. 당연히 교육은 전쟁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제구호단체는 대대적인 학교가기 운동을 펼쳐 1백50만여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들이고 있다. 교실과 교사가 시급한 것은 물론이다.

월드비전은 사업을 벌이고 있는 헤라트와 바드기스 지역에서 건물 상태가 가장 열악한 열군데의 학교를 선정, 교실보수 및 신축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약 4만명의 학생들에게 교실을 마련해 주었는데, 점차 그 숫자를 늘릴 계획이다.

4년째 가뭄이 계속되는 이곳 아프가니스탄. 올 봄, 비가 오지 않아 식량의 씨는 심지 못했지만 다행히 교육이라는 희망의 씨는 뿌릴 수 있었다. 부디 풍성하고 알찬 수확이 있기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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