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街版 신문이 붕어빵 언론 양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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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가 지난해 10월 가판(街版)신문을 없앤 것을 계기로 최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이 '일간지 가판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이에 대한 첫 공론화의 장을 열었다.

가판 신문은 가정에 배달되기 전날 저녁 주로 서울시내 가두판매용으로 발행되는 초판(初版)신문으로 일반 독자보다 관공서·대기업 등에서 주로 본다.

이 토론회에서 발제를 한 정연구(鄭然球)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가판제도가 편집의 유사화에 미치는 영향을 문제삼았다.

그는 "가판 신문의 기사가 정치·행정권과 기업의 영향으로 시내 배달판에서 바뀌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1면 기사나 종합면·사회면 등의 기사가 자주 왜곡되고 있어 그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또 중앙일보의 가판 폐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황용석(黃勇碩)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이 1999년 발표한 가판제도에 대한 연구는 가판신문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면·종합면·사회면·경제면의 가판과 최종판을 비교할 때 기사 변화율이 9개 조간지 평균 약 43%며, 최종판에 추가된 기사 중 타 신문의 가판에 실린 기사가 약 38%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독자에게 배달된 신문들이 밤 사이에 얼마나 비슷해졌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그는 가판의 부정적 기능을 이렇게 정리했다.(정치권·기업 등)취재 대상이 압력을 행사할 여지를 제공하고 기자들이나 언론사들 간에 기사의 논조나 내용에 대한 담합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독자와 무관할 수밖에 없는 신문이라는 점이다.

언론계·학계 일부에선 가판 신문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취재원과 관련 당사자 등이 기사의 잘못된 내용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등 기사를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민희(崔敏姬)민언련 사무총장은 "정치권력이나 기업과의 뒷거래를 막고 신문의 차별화를 위해 가판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언론 유관단체와 협조해 몇차례 토론회를 거치면서 세부 방안을 마련하는 등 '가판 폐지 운동'을 벌일 것"이라며 "중앙일보에 이어 다른 신문도 독자를 위해 가판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판 신문은 방송 보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지상파 방송 노조위원장은 "과거 군사정권 때 친여(親與)신문의 가판을 보고 밤 9시 뉴스의 머리기사를 정할 정도였다. 지금도 신문이 방송 뉴스의 의제 설정에 영향을 주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체간 의제설정(inter-media agenda setting)의 경우 미국도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같은 권위지나 AP 등 통신사가 타 매체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기사 편집이 끝났는데도 다른 신문의 가판을 본 뒤 베껴쓰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황용석 연구위원은 "신문·방송·통신·인터넷 매체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매체 간에, 특히 신문의 경우 차별화된 지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신방과 교수는 "가판 폐지가 타 신문의 기사를 베끼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자가 전문성을 갖추고 기사에 책임지는 등 신문의 차별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준상(趙埈祥)한겨레신문 노조 지면제작 개선위원회 간사는 "가판제 폐지 원칙에 동의한다. 그러나 출입처 위주의 기사 취재에서 떠나 낙종(특종의 반대)하더라도 각 신문이 지향하는 기사를 쓰는 편집국 체제로 바뀌어야 신문의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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