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기관 설이 서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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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설맞이 풍속도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해외여행 예약이 조기 마감되고 백화점에는 손님들로 넘쳐나고 있으나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에는 후원자들의 발길이 끊겨 찬바람이 불고 있다.
◇해외여행 등 북적=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등 각 지역 여행사들의 설 연휴 해외여행 상품은 한달 전께 대부분 예약이 끝났다. 특히 4~5일 일정의 괌·사이판 등 남태평양과 중국·동남아 여행 상품이 인기다. 대전지역의 경우 동남아 여행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30% 늘었다.
대구 하나여행사 관계자는 "문의 전화가 계속 오고 있지만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어 예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여행지 예약도 폭주해 제주도 내 특급호텔과 콘도 예약률이 90%에 달하고 골프장의 경우 설날인 12일을 제외한 연휴기간 부킹이 모두 마감됐다.
백화점 매출도 지난해 설에 비해 20~30% 늘어났다. 서울 롯데백화점의 경우 5백만원짜리 양주 '맥켈란 1946'이 이미 세병이나 나갔고 3백만원짜리 '루이 13세'도 10병이 판매됐으며 33개로 한정해 내놓은 1백20만원짜리 한과 세트는 15개가 팔렸다. 그러나 인천의 백화점들은 예년 수준의 매출을 기록, 지역별 경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썰렁한 불우이웃 시설=치매노인 65명이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 샘터마을에는 간간이 이어지던 후원자들의 발길이 올들어 완전히 끊겼다. 전주 호성보육원도 지난해 설에는 10여건이던 위문품 전달이 올해는 단 한 건도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사회복지시설이 예년보다 더 썰렁한 것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15일부터 기부와 후원행위를 금지한 선거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기부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단체장이나 지역유지는 물론 지속적으로 후원해 오던 독지가들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발길이 뜸해졌다.
특히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전국 6백13곳의 미신고(未申告) 시설은 당장 운영비가 쪼들리는 등 고충이 크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지난달 난방비 명목으로 이들 시설에 4억여원을 지원했을 뿐 별도 지원을 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더욱 힘든 설을 쇨 것으로 보인다. 샘터마을 정숙자(鄭淑子·52·여)원장은 "치매 노인이나 정신지체 장애인 등은 실질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만큼 예외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준호·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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