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그린스펀식 언론 대응' 자료 돌린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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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행이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임원들에게 '그린스펀식(式) 언론 대응법'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자료를 돌렸다.

이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993년 7월 미국의 금리를 결정하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위원들에게 내린 '대외 발언 지침'이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언론인과 얘기할 때나 통화정책과 경제에 대한 대중 강연을 할 때의 가이드 라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린스펀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 다섯가지로 ①이자율과 환율의 향후 움직임②FOMC에서의 최근 결정이나 논의(회의에서 위원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도 포함)③FOMC 회의 개최일을 전후한 1주일 동안 정책이나 경제 흐름에 관한 사항④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시사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경제 전망⑤다른 정부 부처에 대한 평가 등을 꼽았다.

특히 6주 만에 열리는 FOMC 회의일의 앞 뒤 1주일씩은 경제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신 FOMC위원들이 얘기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 주었다.

①광범위한 경제 흐름②광범위한 정책 목표, 정책 추진의 파급 경로와 테크닉③이미 발표된 자료④지역 경제 상황⑤이미 발표된 조사 결과의 배경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허용했다.

그린스펀은 특히 "듣는 사람이 향후 정책의 윤곽을 파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모호하면서도 균형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경우에만 경제 상황에 대해 토론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 규제▶지역개발▶연준의 다양한 전문 업무영역 등에 대한 토론은 말할 것도 없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3분기 국내총생산(GDP) 통계의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두고 개략적인 수치를 언급하고,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은행간 자율합병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 말해 경제 당국자들의 '가벼운 입'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한은이 금통위원과 임원들에게 이같은 자료를 돌려 눈길을 끈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청와대와 재정경제부에는 이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면서 "최근 상황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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