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래도 건보재정은 나눠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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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건강보험 재정 분리를 골자로 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에 전격 상정함으로써 내년 1월로 예정된 직장.지역 건보의 재정 통합에 제동이 걸렸다.

민주당이 반발하고 있지만 현재의 국회 의석 분포상 한나라당이 과반에서 한 석밖에 모자라지 않는데다 자민련도 공조 의사를 밝혀 개정안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건보 통합을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은 모든 가입자의 보험료를 단일 기준으로 부과, 소득 재분배를 통한 국민 연대를 꾀하고 국고 지원을 최소화한다는 것이었다. 또 통합론자들은 전직.실직 등으로 직장과 지역 건보를 오가는 인원이 연간 8백만명에 이르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자영업자 등 지역 건보 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쉽지 않자 건보 통합을 하기도 전에 보험료 부과 방법을 이원화했다.지역 건보에 대한 정부 지원율도 이미 28.1%에서 50%로 늘어났다.

보건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지역 건보는 흑자로 돌아서는 데 비해 직장 건보의 경우 2005년까지 누적 적자가 2조1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럴 경우 지역 건보의 흑자분을 직장 건보 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 통합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직장과 지역 의보 통합 계획을 백지화한다면 직장 건강보험료 인상률은 당초 예상(연간 8~9%)보다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직장.지역 건보 조직은 이미 지난해 7월 통합한 상태여서 분리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그렇더라도 직장.지역 건보 재정은 분리 운영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설사 건보 재정을 내년부터 통합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론 건보 재정 안정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 미지수다.

정부 지원금을 제외하면 지역이든 직장이든 어차피 적자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법적인 통합은 하되 재정 계정은 5년간 분리 운영한다는 정부 방침도 임시 방책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직장 건보 가입자의 경우 소득 파악률이 1백%인 데 비해 지역 건보는 28~55.4%에 그쳐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이런 상태에서 재정 통합이 이뤄진다면 위헌 시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흑자였던 직장 건보가 건보 통합 추진 이후 방만한 운영으로 급속히 적자로 돌아섰음을 상기할때, 차제에 건보 체계에도 경쟁 원리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직장과 지역 건보가 서로 주인 의식을 갖고 비용을 줄이는 등 자구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오히려 재정 건전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입법 추진 중인 담배 부담금을 지역 건보뿐 아니라 직장 건보에도 공평하게 나눠 줘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건보 관계자들은 좀더 시간을 갖고 건보 조직 분리나 직장 건보료 인상 문제 등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향후 재정 통합 백지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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