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역할도 '과외' 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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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5살짜리 딸을 둔 주부 이소진(36 ·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지난 여름방학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사랑보다는 감정의 골만 깊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거 하고 싶어”라는 아들에게 “그거 말고 이거해”라고 윽박지르거나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잔소리꾼 엄마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씨는 9월부터 가까운 여성발전센터에서 운영하는 부모 교실 수강을 신청했다.

"어떤 일이나 그렇듯이 아이 교육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 같아요.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상처를 줄 말을 퍼붓죠. "

그는 "30여년 동안 형성된 내 성격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자꾸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기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고 말했다.

이씨처럼 조금이라도 나은 부모가 되기를 고민하는 사람들 중 아예 연필과 공책을 들고 교육을 받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도 부모 역할 교육은 빠지지 않는 인기 코스.

최근에는 각 구청이나 여성발전센터 등에서도 부모 역할 강좌를 열고 있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한국심리교육연구소 등에서 하는 부모 교육 강좌들은 개설되자마자 신청자가 정원을 넘는다. 신청자가 10여명만 되면 한 강좌를 개설하는 한국심리상담연구소의 경우, 한달에 두차례 새 과정을 시작해야 할 정도다.

이처럼 부모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로 한국청소년상담소 이호준 과장은 핵가족화와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를 꼽는다. 예전의 대가족 제도 안에서는 부모 외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형제, 자매가 각기 다른 역할 모델이 돼 주었지만 핵가족 제도 안에서는 부모가 그 모든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과장은 "한살 먹은 아이에게 엄마.아빠는 아이를 돌봐주는 '양육자' 지만 아이가 사춘기가 될 때까지 '양육자'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고 말한다. 또 상담자가 필요한 사춘기 자녀에게 유치원 때처럼 '훈육자' 역할을 고수한다면 아이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아들 홍근이가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간 올해 초 아이들과의 오랜 싸움에서 지쳐버렸다고 느낀 이양숙(37.경기도 용인시 수지읍)씨는 지역교육협의회에서 진행하는 '성공하는 부모가 되는 7가지 방법' 이라는 제목의 부모 역할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갈등이 깊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아이의 생각이나 개성을 인정하기보다 내 생각대로 이끌어가려고 한 것이 아이와 멀어진 이유 같아요. "

강의를 듣고 난 후 이씨는 "예전엔 아이가 다닐 학원도, 생활규칙도 내맘대로 정했지만 요즘엔 함께 상의해 정하는 식으로 바꿨다" 며 "이제는 아이가 엄마를 귀찮은 관리자가 아닌 친구로 대해주며 대화도 많아졌다" 고 말한다.

최근에는 각종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가정에 있다는 식으로 인식이 바뀌면서 10대들의 성문제, 사회문제를 푸는 데도 부모 교육이 핵심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는 이를 위해 올해부터 양성 평등에 관한 부모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최근 10대들의 성 문제는 가정내에서 남자와 여자간의 의사소통이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일부에서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한다.

이같은 부모 역할 교육은 조기 유학이니 영어 과외니 하는 수많은 교육법, 극성맞은 옆집 엄마 따라하기 등 한국의 부모들을 흔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부모들을 위한 가이드 역할도 한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 부모 교육 강사 조무아씨는 "아이의 나이나 기질에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과 부모 개인의 욕심을 버리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또 "부모가 한번쯤 아이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본다면 아이와의 갈등도 줄어들 것" 이라고 조언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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