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군 주력 아시아로 돌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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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부시 미 대통령이 미군의 군사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국방부 전략문제 전문가인 앤드루 마셜이 21세기 전략보고서를 작성 중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군사력 강화를 계속 강조해왔는데 지난 4일 갑자기 "국방비를 당장 증액하지 않겠다" 고 밝혀 주변을 놀라게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새로운 전략개념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는 게 워싱턴 포스트의 분석이다.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건 마셜의 전략개념이 기존의 미군전략을 완전히 뒤집는 혁신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미군의 국내 및 해외 주둔형태, 무기구입 규모 등이 다 영향을 받을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마셜은 미 공군이 핵심전력사업으로 꼽고 있는 F-22 전투기 생산에 반대하고 있다. F-22 전투기는 주변에 공군기지가 없으면 공격 반경이 좁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마셜은 육군의 중(重)탱크와 항공모함도 21세기에는 유명무실해질 테니 그걸 개발하는 데 국방비를 쓰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제3세계 국가들이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덩치만 크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그런 무기들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마셜은 그 대신 미군이 해외에 많은 군사기지를 설치하지 않고도 연료와 장비보급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전략의 개발을 강조한다.

해군함대를 대폭 정리한 뒤 잠수함을 개발하고 함대가 아니라 미사일을 싣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바지선을 이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주장이다.

마셜은 또 미래의 공군력이 전투기가 아니라 장단거리 미사일과 미사일 방어방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셜의 이런 신개념은 군 관계자들과 방산업체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살 것이 분명하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마셜이 도널드 럼즈펠드 신임 국방장관과 개인적으로 수십년간 친분을 맺어온 사이일 뿐 아니라 1999년 9월에 발표됐던 당시 공화당 부시 후보의 군사공약도 거의 대부분 그의 아이디어를 채용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마셜에게 보고서 작성을 요청한 것도 럼즈펠드 본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셜은 또 미군의 주전력을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향후 미군의 주적은 중국이며, 2025년이면 러시아보다는 인도가 미국에 더 위협적 존재가 될 것이란 주장이다.

마셜의 보고서는 오는 3월 제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군이 과연 21세기에 기존의 전략을 대폭 수정한 새로운 전략개념을 도입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보고서 작성 앤드루 마셜은…

신전략 보고서를 작성 중인 앤드루 마셜(사진)은 베일 속 인물로 올해 79세다.

미국 언론은 그가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50년 이상 미 군사전략에 관여해온 유일한 인물로 매우 급진적인 개혁론을 펴고 있는데도 정부와 학계, 방산업체 등에 수많은 추종자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 등도 그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부시 대통령의 군사정책 기본틀도 그의 전략개념을 채택한 것이라고 한다.

마셜은 1949년 랜드연구소에서 핵전략가로 일하다 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부터 국방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80년대 들어서부터 러시아가 위기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고, 냉전이 끝난뒤부터는 중국을 억제하는 전략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전임 클린턴 행정부하에서는 외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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