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홀] '춘향뎐' 이 보여준 한국적 영화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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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최근 미국 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트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을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 , 왕자웨이 감독의 '화양연화' 와 함께 올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

그러나 일반 관객의 반응을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현재 상영관이 두 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음달 2일 16개관, 그리고 다음달 말 1백20개관으로 확대 개봉한 후에나 평가할 일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춘향뎐' 이 미국평단에선 왜 격찬을 받을까. 실제로 '춘향뎐' 은 지난해 개봉 당시 서울 관객 10만명(전국 24만명)이라는 밋밋한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국내 평단의 의견도 엇갈렸다.

전문가들은 일단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원인으로 꼽는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춘향전' 이지만 외국인에겐 신비스러운 텍스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임재철씨는 "문화 환경에 따라 수용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며 " '춘향뎐' 의 장면 장면이 미국인에겐 색다르게 느껴질 것"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언론들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의상.건축.음악 등에 '숭고하다' '화려하다' '장엄하다'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그들의 세밀한 부분에 대한 평가자세와 더불어 이국적인 것에 대한 일종의 동경으로도 풀이된다.

게다가 '춘향뎐' 이 판소리를 매개로 작품을 풀어가는 까닭에 미국인은 영화 자체를 '신종 뮤지컬' 로 감상하는 분위기다.

'춘향뎐' 이 '스펙터클하다' '서사적이다' 하는 지적도 흥미롭다.

우리에겐 완벽한 서정시로 다가오는 '춘향뎐' 을 그들은 왜 서사시로 이해할까. 아마도 영화 속에 조선시대의 역사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일 것.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 '춘향뎐' 의 진정한 배우는 바로 판소리와 1910년 일제의 통치가 이루어지기 전 6백년 역사가 만들어낸 조선의 문화유산" 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아시아 영화의 약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지난 14일 뉴욕 타임스는 "아시아 영화가 미국 영화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며 "한국.중국.대만 등의 영화적 창조력이 높아지면서 수출 또한 늘고 있다" 고 보도했다.

'춘향뎐' 의 인기엔 임권택 감독의 명성도 한몫 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이름이 났으나 임감독의 작품이 미국에서 개봉되기는 이번이 처음" 이라며 "일본에 비해 외국에 덜 알려진 한국영화의 희소성도 작용했을 것" 이라고 풀이했다.

반면 임권택 감독은 "영화의 구석구석에 숨겨진 감독의 의도를 일일이 파고드는 미국 언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며 "미술.세트.조명.녹음 등에 혼신을 다했기에 이런 평가가 나온 것이 아니냐" 고 반문했다.

영화를 제작한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는 "한복 입고, 댕기 따고 나오면 낡은 영화로 치부하는 우리의 문화풍토가 문제다" 며 젊은이 일색인 한국 영화관객의 한계도 지적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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