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유창혁-야마다 기미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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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35분 장고끝의 대응 白84

제4보 (73~95)〓야마다는 역류하는 흐름을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표정은 무심한 듯했으나 순식간에 벌어둔 재산을 다 날려버린 아픔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지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꽉 깨물고 만다.

정수를 찾는다면 A로 막아두는 수. 그러나 상대가 B로 붙인다든지 하여 중앙의 공배를 슬슬 집으로 만들어오면 문제가 보통 심각해지는 게 아니다. 야마다는 73부터 82까지 임기응변한 다음 83의 날카로운 역습으로 나왔다.

창밖 저쪽으로 바다를 넘겨다 보며 짐짓 여유를 보이던 劉9단이 83의 강수에 눈을 번쩍 뜬다.

중앙 백은 집이 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삐긋하면 곤마로 전락할 수 있다. 83은 바로 그 민감한 곳을 제대로 찔러온 것이다.

승부처임을 직감한 劉9단이 끝없는 장고에 빠져든다. 우선 '참고도' 백1로 끊는 것은 흑6까지 진행된 다음 흑이 A와 B를 맞봐 안된다.

강수가 어렵다면 어떤 식의 타협이 최선일까. 劉9단은 무려 35분을 고심하더니 84에 두었다. 덤덤한 중용의 수. 불끈 화를 내는 대신 상대를 인정하고 한발 늦춘 수.

"재미있는 수예요. 劉9단의 탄력이 느껴집니다" 하고 홍태선8단은 말한다.

백의 의도는 상대가 85, 87로 깎은 다음 91로 연결할 때 92에 두어 중앙을 에워싸겠다는 것이다.

"백도 수습했습니다만 흑이 꽤 했어요. " (洪8단)

그런데 형세가 풀리자 야마다가 마음이 약해져 93, 95로 나온다. 한집이 금쪽같은 박빙의 바둑에서 A나 C 같은 큰 곳 대신 어정쩡한 곳에 두고 만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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