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세대들이 쓴 현대사 '아버지, 난 누구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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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남북 정상회담.이산가족 상봉 등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할 굵직굵직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유독 n세대의 반응을 궁금해한다.

n세대는 자기 이외의 모든 일에 무관심하다는 비(非)n세대들의 선입견이 '얘들이 이번에는 좀 관심이 있나' 하는 호들갑을 떨게 하는 것이다.

지난 학기에 서강대 사학과 백승종 교수가 만난 학생 37명이 자신, 혹은 부모의 삶을 하나의 키워드에 맞춰 쓴 짤막한 글을 모은 '아버지, 난 누구예요' 는 바로 이 n세대들이 쓴 우리의 현대사다.

역사학 강의 와중에도 "애국심이니 국가와 민족 같은 말은 다시 듣기도 싫다" 고 거침없이 말하는 n세대. 그들과 역사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정치적 사건이나 지도자보다는 일반인들의 평범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 미시사(微視史)에 주목하는 최근 역사학의 한 흐름에 비추어보면 n세대의 솔직한 자기고백인 이 책은 아주 훌륭한 미시사 책인 셈이다.

'교사 홍태남의 교통수단 변천사' '어느 회사원의 내집 마련의 역사' '한 공무원의 월급 봉투로 본 가족 경제사' 등 학생들이 잡은 테마만으로도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개인으로서는 아주 사적인 경험이지만 사회.경제적 변화의 큰 흐름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데서 큰 틀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작은 재미다.

'1972년 아버지 월급은 쌀 두가마니 반을 살 수 있는 2만4천원이었다' 는 내용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기록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같은 역사적 사건에 반응하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5공 시절을 공무원들이 살기 좋았던 시절로 회상하는 어머니를 둔 광주 출신 학생은 부모 견해를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이 느끼는 역사가 그 개인에게 가장 진실된 역사라고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인 정교용의 아들에게 80년 5월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다. 그해 5월 17일 기자협회 부회장이던 아버지는 26일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 8년이나 계속된 아버지의 실직은 온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개개의 학생들이 인상깊었던 사건들을 골라 썼지만 이를 한줄에 꿰고 나니 삼풍백화점 붕괴.왕따.IMF.김정일 쇼크 등 현대사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험은 달라도 반공과 반일.지역감정의 세뇌를 받고 대학지상주의에 좌절했던 공통점을 지닌 n세대들이 쓴 자기 이야기를 통해 기성 세대들은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지나간 과거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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