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 교수 '나의 출가' 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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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내 인생은 영겁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내 짧고도 긴 삶은 어떤 파도에 끼여 어떤 물결을 타고 어디로 흐르는가? 밤 하늘 밝은 달은 대답을 알고 있을까? 반짝이는 수많은 저 별들은 무엇을 속삭이고 있는가? 지나가는 바람은 우주의, 그리고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가? 인터넷은 별들의 소식을, 바람의 대답을 우리들의 컴퓨터에 전해줄 수 없을까?"

삶과 존재에 대한 참으로 낡고 평범한 질문들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세상에는 배움과 앎의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찾아야 할 진리는 무한하다" 며 치열하게 지적 편력을 하며 70대로 접어든 철학자 박이문(朴異汶)교수도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이유 없이 태어나, 이유도 모르고 살다가, 이유도 없이 죽는다. 이유가 없어서 인생은 더 자유롭고, 이유가 없기에 우리의 삶은 더 신난다" 며 초발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올 초 포항공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박씨가 최근 에세이집 '나의 출가;영원한 물음' (민음사.6천원)을 펴냈다.

"세속적 욕망을 끊고 구도의 길로 접어드는 출가(出家)는 인간적으로 얼마나 치열한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는가" 라고 물은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제부터라도 더 철저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각오로 제목에 '출가' 라는 말을 덧붙였다" 고 밝히고 있다.

총3부로 구성된 이 책 1부는 문학과 철학.미학.사회학.생태학 등의 지적 편력과 한국에서 프랑스로, 미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편력 과정과 그 이유, 2부에는 나는 누구이고 과연 어떤 삶이 깊고 넓고 가치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실려있다.

3부에는 지난 2월 포항공대 제자들에게 "우리는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멀더라도, 한없이 고귀하고 숭고하며, 거룩하고 충만한 의미/가치의 높은 산정으로 향하는 길을 도중에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생각할 수 있는 세계보다 더 높고 고귀하고 성스러운 세계가 반드시 있다" 고 행한 '고별 강연' 이 그대로 실렸다. 시인이고 에세이스트이기도 한 저자의 말끔한 문장과 솔직하고 쉬운 글들이 읽을 맛과 함께 '삶의 깊이' 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의 이해를 돕고 있다.

평생을 합리적 이성으로서 '이유' 를 찾아 헤맨 노학자가 왜 '이유가 없다' 고 패배적, 회의적 답을 내리느냐고 묻자 박씨는 "궁극적인 물음은 이유도 없고, 설명할수도 없기 때문" 이라고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는 이런 궁극적 질문도 이제 던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묻더라도 그 이유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속된 가치에 결부시키며 해답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할수 없는 삶과 세상의 궁극적 의미를 더욱 철저하고 투명하게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노학자는 끝날수 없는 물음을 들고 출가한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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