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일 기자의 산을 오르며…] 낯선 길의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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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울의 언저리인 우이동은 북한산의 몇몇 정문 중 하나다. 이 곳에서 왁자한 북한산으로 오르지 않고 도봉산을 찾는다면 산력(山歷)이 엔간히 붙은 산꾼들이다.

그린파크 호텔과 파출소 사이의 우이령 도로를 따르다 다리 앞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꺾는다. 원통사 팻말이 걸린 이 길목은 도봉산의 샛문인 셈이다.

매표소를 지나 곧바로 능선이다. 연분홍 꽃송이가 언제 그리 화사했던가 싶은 철쭉들…. 그 푸르께한 이파리들을 스치며 할아버지 한 분이 내려온다.

맨지게를 걸머메고 어깨에 작대기를 척 걸쳤다. 우이동 가게로 물건을 떼러 가는 보문산장의 산장지기 할아버지다.

강파른 몸피와 퀭한 눈자위로 보아 지긋한 나이인데도 찬찬한 걸음새는 흔들림이 없다. 그만한 기력이면 아직도 지게에 구구한 세월 한 뭉치쯤 지고 끙, 하고 일어서겠다.

송전탑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널따란 능선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가지를 친 샛길로 잡아들었다.

어디서든 길을 놓치더라도 기우는 해의 눈치를 별로 살피지 않고 되짚어 나올 수 있는 게 근교 산행이 아닌가.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낯선 길의 은밀함을 탐내 보는, 쏠쏠한 재미를 결코 참을 수 없다.

길이 좁아 풀잎과 나뭇잎이 얼굴에 스적거리지만 풋풋한 향기를 거저 들이켤 수 있어 좋다. 상큼한 공기도 제법 마시고 나니 심심하다 싶을 즈음, 맵싸한 냄새가 톡 쏘는데 콧속이 아릿하다.

날카로운 가시와 강렬한 향이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울타리용으로 심고 지팡이도 만든다는 산초나무다.

잡다한 잎사귀들 사이에 유난히 튀는 저 것은 또…. 산처녀가 생머리를 동그랗게 간종이고 뒤꼭지에서 야무지게 홀맺은 듯, 잎사귀가 매끄러운 청미래덩굴이 아닌가.

땡글땡글한 맹감(명감)열매들이 잎사귀 밑에 모여 햇살을 피하고 있다.

샛문으로 들어와 또 샛길로 빠졌는데 이런 눈요기 횡재가 어디인가. '으슥한 데 꿩 알 낳는다' 고 하더니 넓고 편하고 경치 좋은 길만 걸을 게 아니다.

가끔은 구석도 기웃거려 볼 일이다. 팥배나무 옆의 너럭바위를 그냥 지나치면 아무래도 손해가 크지 싶다. 햇살을 받아 축 늘어진 칡넝쿨 잎처럼 반석에 벌렁 드러누워 무심히 시간을 보낸다.

힁허니 걸었다면 벌써 원통사나 보문산장에 닿을 때지만, 정상을 밟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게 또 근교 산행이다. 나이 지긋한 산장지기도 이 하루를 서둘지 않는데 남세스럽게 아등바등할 까닭이 없으렷다.

배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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