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다시보기] 서현 '건축, 음악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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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건축은 삶' 이라고도 하고 '건축은 문화의 거울' 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 건축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서현(한양대 건축공학과)교수가 펴낸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효형출판.1만4천원)는 이런 점에서 귀한 존재다. 우리 건축물을 짧게나마 평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저자는 "저 건물은 멋있는 겁니까" 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썼다고 밝힌다. 그간 외국의 건물을 소개한 건축 입문서들이나 번역서들이 종종 선을 보였지만 막상 우리 주변의 건물을 설명한 것은 드물었다.

1998년 7월 출간돼 2년 동안 3만부 정도가 나갔으며 요즘도 월 5~7백부씩 꾸준히 팔려나간다. 전문가 1백명이 선정한 90년대의 책(교보문고 조사), 98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간행물 윤리위원회 권장도서 등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곳곳에서 좋은 평가도 받았다.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는 책들의 기본 요건인 쉬운 서술은 이 책에서도 돋보인다. 그러나 마냥 줄줄 읽히지는 않는다. 교과서처럼 난도를 점차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과 미술 얘기를 곁들이며 수필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전문적 지식을 습득한다. 건축을 보는 안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

책은 새 집에 가서 벽에 그림을 걸고 못을 박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동네를 돌아 도시로 향한다. 서울에는 시각적 구심점인 남산타워가 있고 따로 보면 뚱뚱하지만 둘이 서 있어 샅바를 잡은 씨름선수들처럼 긴장감을 풍기는 LG트윈타워가 있다.

검은 삼일빌딩은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꽉 짜인 비례감을 극도로 추구한 작품이며 병풍을 닮은 힐튼호텔도 있다.

이렇게 건축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이 책은 끝부분에서 국립 현대미술관.포스코센터 등에 대한 본격 건축 비평을 곁들인다.

친절한 도판 해설과 치밀한 편집도 책을 살리는 요소. 모두 3백여컷의 원색 사진과 80여컷의 일러스터가 사용됐다.

"우리 것이라고 해서 왜 기와집이나 처마선만 갖고 얘기하나. 서울 가득한 지금의 건축물로 우리 건축을 얘기해야 할 것 아닌가" 란 저자의 항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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