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의협 “아동 성폭력 공동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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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변호사·의사들이 아동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힘을 합치겠다고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는 1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합동 대책’을 발표했다. 두 단체는 이날 회견에서 “조두순 사건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보며 근본적인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변호사·의사들이 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한 대책은 아동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적절한 의료·법률적 대책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아동 성폭력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 증거를 놓치거나 피해자에게 반복된 진술을 강요하는 등의 허점을 보여왔다. 특히 조두순 사건에선 치료·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충격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의사협회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이르면 내년 초에 ‘중앙 아동 성폭력 의료기동반’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신경정신과·산부인과·소아과 등 7개 학회와 한국여자의사회가 기동반에 참여한다. 기동반은 전국 경찰과 공조해 성폭력 사건 현장에 의사를 직접 파견한다. 현장에서 의사가 어린이 상태를 진단해 초기 치료를 해 주고, 범인의 체액 등 증거를 수집하겠다는 것이다. 경만호 의사협회장은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느끼는 당혹감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피해자가 성폭력 상처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연계 치료도 알선하겠다”고 말했다.

변호사협회는 성폭력 피해 아동을 위해 무료 법률구조 활동을 하기로 했다. 또 성폭력 전담 변호인단을 구성해 피해 아동이 재판 과정에서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새로 마련할 ‘예비 법정제도’가 이를 위한 장치다. 피해 아동이 미리 재판 과정, 판사·검사·변호인의 역할에 대해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가 재판정에 서더라도 떨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할 수 있게끔 돕겠다는 것이다.

두 단체는 앞으로 어린이 성폭력 사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또 피해자·변호사·상담사 등이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요약한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이명숙(변호사) 변협 인권이사는 “그동안 변호사·의사들이 서로의 영역을 잘 몰라 협력에 한계가 있었다”며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협력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형기준 개정 필요”=이날 기자회견에서 변협은 어린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평우 변협 회장은 “술을 마시고 성폭력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 형량을 깎아주는 현행법(심신미약감경 제도)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어린이가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성폭력 사건이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 어린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성폭력 사건의 공소시효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협은 제도 개선을 위해 입법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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