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 첫 내한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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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태어난 스트래트포드 어폰 에이본에서 지난 1월 열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연극 발성 세미나에 참여한 연출가 김철리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노배우들도 점심시간을 활용해 자기들끼리 모여 않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영미문학의 14행 단시)를 낭송하더군요. 나이 상관없이 모두 연습벌레로 보였어요. " 그는 특히 예술감독 애드리안 노블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노블은 "지난 20여년간 극단과 함께 하면서 가장 크게 발견한 것은 '평생 배운다' 는 마음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끝까지 공부하고 훈련하는 게 연극인이 살아남는 길이다" 고 말했다고 한다.

영국 정통연극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흔히 줄여서 RSC로 부른다.

그 RSC가 처음으로 내한, 다음달 6~10일 LG아트센터 02-2005-0114, (http://www.lgart.com)에서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말괄량이 길들이기' 를 공연한다.

RSC는 1백20년의 관록을 쌓은 영국의 대표적 극단. 1879년 스트래트포드 어폰 에이본에서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으로 출발해 1960년대부턴 런던을 본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엔 현대 실험극도 적극 수용하며 전통과 현대의 접목에도 관심이 크다. 로렌스 올리비에.비비언 리.피터 오툴 등 숱한 스타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RSC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큰 동인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교육 프로그램. RSC 단원들은 발성.대사.신체 등 연극의 모든 표현요소를 부단하게 훈련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에 공연되는 '말괄량이…' 는 RSC의 진가를 감상하는 자리로 기대된다.

김철리씨는 "RSC 배우들은 힘과 정교함을 동시에 갖췄다" 며 "힘이 넘치는 반면 감성적으로 흐르는 한국 배우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 이라고 예상했다.

미리 구해 본 비디오를 통해서도 이같은 RSC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무대 자체는 수수했다. 현란한 장치 대신 배우들의 연기를 최대한 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복잡한 세트 전환이나 요란스런 조명을 가급적 줄이고 배우들의 활달한 몸짓과 자연스런 동선을 통해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나갔다.

'말괄량이…' 는 국내서도 자주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코미디. 괄괄하고 고집센 여성이 천적 같은 남편을 만나 고분고분한 아내로 변한다는 줄거리다.

희곡 자체로는 여성을 비하하고 구성도 산만해 셰익스피어의 '졸작' 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특유의 익살스런 내용으로 영화.뮤지컬로도 자주 제작돼 일반인에겐 친숙한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10월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돼 호평을 받았다.

연출가 린지 포스너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포스너는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남녀관계.결혼 등의 얘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나간다.

특히 도입부를 20세기로 옮겨 놓았다. 원작의 16세기 후반을 현대로 치환해 땜장이 슬라이가 술집에서 쫓겨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만취한 상태에서 한 귀족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신이 위대한 영주인 것으로 착각한 그가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접속하다가 우연히 '말괄량이…' 영화를 찾아내고 이를 구경하게 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관객으로선 남녀관계에 대한 연출가의 해석을 눈여겨 볼 만하다. 원작에 나타나는 남성 우월주의를 상당 부분 비판하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들은 "젊은이들이 찬동할 수 있게 유쾌한 작품으로 새로 만들었다" "술 취한 슬라이를 통해 남성지배에 대한 환상을 본다" "돈과 성에 지배되는 성의 정치학을 재현했다" 등으로 평가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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