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이 목숨 거는 이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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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면 교무실로 달려와 ‘이것’을 달라고 조른다. ‘이것’을 받기 위해 착한 일도 하고, 성적을 올리려고 열심히 공부한다. 포기한 아이들은 졸업날만 기다린다.
한 교사는 "아이들이 '이것'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라고 말한다. 초등학생들이 애태우는 ’이것’의 정체를 찾아 강원도 원주를 찾았다.

‘이것’ 받으려 공부하는 아이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도착한 치악초등학교. 음악 소리가 들리는 강당을 들여다보니 아이들의 목에 조그만 나뭇가지가 걸려있다. 자세히 보니 구멍도 있고 반들반들 윤기도 감돈다. 나무로 만든 호루라기다. 하나의 음만을 가진 호루라기가 이처럼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이들의 연주룰 한참 듣다가 고개를 돌리니 중년의 남자가 아이들을 지휘하고 있다. 나무 호루라기를 만들어 합주단을 만든 홍의재 교감이다.

홍 교감은 한국스카우트교수회 모임에서 우연히 나무 호루라기를 알게 됐고, 그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나무 호루라기를 만들고 있다. 처음 몇몇 아이들에게 나눠주다가 이제는 달라는 사람이 많아 나름의 순서를 정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1000명이 넘는데 다 나눠 줄 순 없어서 졸업할 때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랬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교무실에 와서 달라고 조르더라고요. 그래서 착한 일을 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한 아이들에게 상으로 주기로 했습니다.”

1600개의 나뭇가지서 찾아낸 '음악'


‘삑~ 삐~’ 나무호루라기는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지금까지 1600개가 넘는 호루라기를 만들었는데 이들의 소리가 다 다르단다. 이 중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을 지닌 호루라기를 찾아 만든 것이 세계 유일의 '나무호루라기 합주단'.
핸드벨의 원리를 이용한 나무호루라기 합주단은 매일 아침, 점심 학교 강단에 모여 연습한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음악을 이웃들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호루라기 합주단이라는 게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게 있다고 다른 분들에게도 보여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이 담긴 연주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조두순 사건 후, 호신용으로 사랑받아

나무 호루라기는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대신 호루라기를 분다. 어떤 아이는 친구를 부를 때 사용하고, 또 다른 아이는 친구와 누가 더 큰 소리를 내는지를 겨룬다.
최근, 조두순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지면서 '나무 호루라기'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가늘고 긴 나무 호루라기는 여느 호루라기에 비해 고음을 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좋아 호신용으로 인기다.

“자연의 아름다운 음이 나무 호루라기의 매력이죠. 또 어린이들이나 부녀자들이 호신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리가 고음이고 독특해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불면 주위의 이목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나무 호루라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홍 교감은 더 바빠졌다. 여기에 6학년들의 졸업까지, 올 겨울에만 100개가 넘는 호루라기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하루에 10개를 만들기도 힘들다. 적당한 나무를 구해 말리고 자르고 사포로 문지르고 구멍 내고 풀칠에 낙관작업까지, 나무 호루라기 1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다. 나무에 구멍을 내고 사포로 문지르다 보니 손은 상처투성이고 집에서는 구박만 돌아온다.

“남들은 저를 보고 미쳤다고 할 지 몰라요. 한 시간씩 공들여 하루에 7~8개 만들거든요. 그렇다고 파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눠주는 즐거움에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이 나무 호루라기로 즐거움을 느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나무호루라기 합주단의 연주와 호루라기 제작 과정은 아래 동영상 또는 TV중앙일보에서 볼 수 있다.

뉴스방송팀 송정 작가·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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