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탈주병 붙잡고도 조사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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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미군 사병이 첫 재판을 2시간여 앞두고 미군 당국의 감시소홀을 틈타 기지에서 탈주했다가 8시간 만에 한국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한국 검경(檢警)은 한.미행정협정(SOFA) 규정에 따라 탈주경위 조사조차 못한 채 붙잡은 탈주병 신병을 다시 미군측에 넘겨줬다.

◇ 탈주〓28일 오전 8시50분쯤 미2사단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22)상병이 서울 미8군 용산기지의 법무감실내 회의실에서 방충망을 뜯고 도주했다.

매카시는 이날 오전 8시45분쯤 전투복 차림으로 변호인 접견을 마친 직후 회의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가로 80㎝.세로 80㎝의 방충망을 뜯고 빠져나갔다.

그는 오전 11시 서울지법에서 열리는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평택 험프리기지 헌병구치소에서 이송돼 오전 8시20분쯤 법무감실에 도착했었다.

◇ 검거〓매카시는 이날 오후 5시쯤 서울 이태원동 H의류상가 지하에서 구입한 옷을 갈아입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도주 후 전투복 상의를 벗은 군화 차림으로 옷가게에 들러 "아버지 생일선물을 찾는다"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 는 등 당황한 모습으로 횡설수설, 이를 수상히 여긴 상인(45)이 경찰에 신고했다.

검경은 매카시를 상대로 도주 경위 등을 조사하려 했으나 매카시가 묵비권을 행사해 이날 오후 7시쯤 미군수사대(CID)에 신병을 넘겼다.

◇ 한.미행협〓매카시는 지난 2월 1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N주점에서 여종업원 金모(31)씨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달 28일 한국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매카시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으나 미군측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신병은 미군측에서 확보한다' 는 한.미행협 규정을 들어 신병 인도를 거부했다.

한편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불평등한 SOFA개정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한.미 양국은 조속히 행정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채병건.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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