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태정씨 진실 밝혀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옷로비 사건의 김태정(金泰政)피고인이 법정 진술을 통해 "최초보고서를 건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만 영원히 밝히지 않겠다" 고 말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온 국민의 의혹을 샀던 국가적 스캔들이 결국 재판과정에서도 제대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될 우려마저 있다.

金피고인은 오랜 검사 생활을 거쳐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무엇보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 생명인 법 집행의 국가 최고책임자를 지낸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건에 대해서는 이처럼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은 떳떳지 못한 행동이다.

그가 보고서 전달자를 감추는 행위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 차원으로 볼 수는 있다. 개인이나 기관끼리의 의리지키기 차원일 수도 있고 혐의내용을 감추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진술 중 "모든 비판은 내가 감수하겠다" 는 부분도 공판에 회부돼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 피고인 신분으로는 명분이 없는 말이다. 평생 사회공익을 위해 일해온 사람의 진술로는 더욱 적절치 않다.

특히 전달자를 밝히지 않겠다면서도 굳이 "박주선(朴柱宣)비서관은 아니다" 고 진술한 것은 속셈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옛 부하에게 혐의사실을 추궁당하는 金피고인의 어려운 처지에는 동정이 간다. 또 평소 가깝게 지냈던 후배의 신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인 만큼 진술을 꺼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옷로비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로 특별검사제까지 도입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만큼 한치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될 사안이다.

이제라도 金피고인은 최초보고서의 전달자가 누구이고 무슨 목적으로 넘겨줬는지를 명쾌하게 밝혀야 한다. 사실을 숨기면서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검찰 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진실 공개만이 국민과 역사, 검찰 조직을 위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