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16대 총선 우먼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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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에서 말할 것이 있으면 남성에게 시키고, 실천할 것이 있으면 여성에게 맡겨라" 고 말한 사람은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였다.

'철(鐵)의 여인' 의 눈에 비친 남자 정치인은 말만 번지르르할 뿐 실천력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집권기간 중 영국에서 여성 정치인의 진출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았던 걸 보면 자신의 집권을 합리화하기 위한 교언(巧言)이 아니었나 싶다.

영국 여성운동사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여성의 위력을 보여준 사람은 팬커스트 삼모녀(三母女)였다.

'여성에게 투표권을(Votes for Women)' 이란 슬로건으로 유명한 팬커스트 모녀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영락없는 테러리스트였다. 에멀린과 두 딸인 크리스터벨과 실비아는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결성, 극한투쟁에 들어갔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여성참정권 운동단체로 기록된 이 조직의 모토가 '말이 아닌 행동(Deeds not Words)' 이었다. 여성의 정치참여에 미온적인 남성 유력정치인의 사무실에 돌을 던지고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정당집회에 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유치장 드나들기를 밥먹듯했고 투옥에는 단식으로 맞섰다. 세 모녀의 처절한 투쟁이 아니었던들 여성의 정치참여는 훨씬 늦춰졌을지 모른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16대 총선에서 5명의 지역구 여성당선자가 배출됐다. 단 한명도 없었던 14대 때나 2명에 그쳤던 15대에 비하면 '우먼파워' 의 약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례대표 당선자까지 포함하면 모두 15명의 여성의원이 여의도 의사당에 입성하게 돼 15대 때의 9명보다 크게 늘었다. 전체의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3.01%에서 5.86%로 높아져 국제의회연맹(IPU)가입 1백77개국 가운데 여성의원 비율로 따져 1백5위에서 90위로 순위가 올라가게 됐다. 그렇지만 세계평균인 13.5%에는 아직도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세계에서 여성의 정치참여가 가장 활발한 스칸디나비아 3국은 전체 국회의원의 38.8%가 여자다.

1위인 스웨덴은 무려 42.7%에 달한다.

북구 국가들은 1970년대부터 시행한 여성후보 할당제를 통해 여성의 정치참여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우리의 경우도 정당법을 고쳐 비례대표 후보의 30%를 여성으로 채울 것을 의무화한 것이 이번에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게 제몫을 찾아줄 수 없다. 그야말로 '말이 아닌 행동' 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조치가 16대 국회에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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