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 회장직 사임하고 수사의 길 들어선 오웅진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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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곳에 가면 모두가 꽃이 된다.

주는 이는 받는 이가 되고 못가진 사람은 가진 사람이 된다.

자선의 손길을 내밀러 충북 음성 꽃동네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온다.

1976년부터 걸인들에게 블럭 집을 지어주고 같이 살며 오늘의 꽃동네를 가꾼 오웅진(吳雄鎭.55)신부가 꽃동네 회장직을 1월28일 내놓고 수도회 수사가 됐다.

(본지 1월31일자 26면 보도) 자신이 10여년전 설립해 3백여 봉사 수사와 수녀를 배출한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수사가 된 오신부를 만났다.

- 이제 꽃동네와 결별하는 것입니까.

"꽃동네를 떠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 곳에 뼈를 묻자는 것이지요. 이제 완전히 꽃동네 사람이 된 것입니다. "

- 회장직을 내놓으면 운영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입니까. 갑작스러운 사퇴에 3천5백명 가족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80여만 회원들이 안타깝게 여길텐데요.

"지금은 운영에서 완전히 물러나는게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며 지내겠습니다. 혹시 운영에 대해 물어오면 자문이나 하렵니다. 의지할데 없고 얻어먹을 수 없는 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대신해 그들을 편안히 살리려는 것은 저의 변함없는 소망입니다. "

- 수도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영성(靈性)을 기르기 위한 기도와 묵상을 하겠습니다. 평범한 수도자 신분이니만큼 가톨릭교회법이 정한대로 수련을 하는 것이지요. 원래 수사는 10년간 수도원 생활을 해야 하지만 제가 신부인 만큼 1년여의 수련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 수련을 마치면 꽃동네에 그대로 남아 일할 예정입니다. "

- 오신부를 꽃동네로 이끈 최귀동 할아버지의 10주기(지난달4일)에 맞춰 청주교구에 수도회 입회 윤허요청서를 제출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구걸한 음식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걸인들을 다리 밑에서 돌보고 있는 최귀동 할아버지는 제게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 이라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제 꽃동네는 제가 아니어도 움직여 나갈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고 봅니다.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꽃동네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서를 냈고 고맙게 그것이 받아들여졌습니다. "

- 꽃동네의 규모가 너무 커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작아야 체온이 통하는 참된 사랑을 나누기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된 것은 제가 하고 싶어서도 하기 싫어서도 아닙니다. 길 위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어찌 그냥 둘 수 있겠습니까. 꽃동네가 저도 빨리 망했으면 합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한명도 버림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로 가는 길, 그 사랑을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기 위한 산교육장으로 꽃동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

- 어려운 이들을 누가 돌봐야합니까. 국가입니까, 가정입니까.

"공적인 구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밑받침되지 않은 구제는 소외된 이를 더욱 불쌍하게 하고 가족제도를 손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가정의 사랑과 윤리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

음성〓이경철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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