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변혁중] 뜨거운 이슈…뜨거운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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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민사회의 낙천.낙선운동은 지금 한국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만큼 독자나 학계의 관심도 컸다.

중앙일보는 낙천.낙선운동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변화의 실체를 잡기 위해 '긴급진단-한국사회는 변혁 중' 을 기획, 연재했다.

네 명의 전문가가 발제하는 동안(유시민-문화 대충돌이다/유석춘-함정도 있다/정수복-서열사회의 붕괴다/심지연-카르텔정당 깨기다) 많은 독자들이 의견을 보내왔다.

또 이 기획을 진행하면서 학자 30여명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독자와 학자들의 의견을 내용별로 분류해 소개하고, 보내온 글 중에서 종합적인 문제진단을 한 이기홍 (강원대.사회학)교수의 글을 함께 싣는다.

의견이 있는 분은 팩스(02-751-5228) 나 e-메일로 보내주시거나 게시판(http://bbs2.joins.co.kr/servlet/ViewList?ID=kms)에 의견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기고- '성공' 도취말고 '위험'대책 세워야]

큰 갈채와 작은 우려 속에서 총선연대 등의 '낙천.낙선운동' 은 일단 2000년 4월 총선의 중심적인 의제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반향이 실제로 투표용지에 옮겨져 '물갈이' 를 결과할 것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히려 근래의 언론들에서 이 운동을 계기로 어떤 정당의 지역적 지지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등의 예상을 서슴없이 내놓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어쩌면 이 운동조차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에 포섭돼 지역주의를 강화하는 데 한 몫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쯤해서 우리는 이 운동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운동에 우리 사회가 '열광'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먼저 작게 보아 이 운동이 '후보들에 대한 정보 제공' 으로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각각의 지역구민이 자기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후보에 대해 시민운동 단체가 제공하는 개략적인 정보에 기댈 만큼 무지하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큰 맥락에서 시민운동의 정치사회 개입에 주목하고, '정치사회' 로부터 '시민사회' 로의 권력이동과 권위주의적 정치구조의 해체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가깝게는 1987년 6월항쟁에서 이미 시민운동의 정치사회 개입과 그것의 왜곡된 결과를 경험했다.

6월항쟁에서의 개입의 힘에 비교하면 이번의 '운동' 은 개입이라고 하기조차 어렵다.

물론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의 구조가 바뀌고 시민사회의 역량이 강화됐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정치사회의 경과를 생각해보면 이런 변화가 정치사회를 움켜쥐고 있는 지역주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이 운동에 대한 열광과 반향은 과장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에서 대중매체, 특히 텔레비전은 이 운동의 '현장' 을 생중계하고 명단을 공시하면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운동' 은 텔레비전이라는 영향력 큰 매체를 얻음으로써 이른바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무기력감을 약화시키고 부패.무능 정치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미디어 정치' 에는 일단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성공이 운동 자체의 역량이나 시민사회로의 권력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실정법 위반' 이라는 중요한 약점을 가진 이 운동을 현직 대통령이 긍정 옹호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텔레비전이 생중계까지 하면서 '국민적 관심사' 로 설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운동은, 그것이 지난 2년여의 DJP 공동정부 성과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4월 총선의 또다른 의제를 희석시키려는 정략에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사회의 권력관계에 사로잡혀버릴 위험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여주는' 미디어 정치에는 또다른 함정이 자리하고 있다.

당장 텔레비전에 나타난 운동은 부패.무능.저질 정치인의 얼굴과 이름만 보여줄 뿐 그들을 국회의원이나 주요 공직자로 활보할 수 있게 만든 '구조' 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즉 미디어 정치는 현실을 미디어에 적합한 형태로 구성하고 각색하면서 현실에 작동하고 있는 구조와 관계들을 감춰버림으로써 시청자들을 오히려 무지하게 만드는 함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이 '선거혁명' 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성공' 에 도취되지 않고 이런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까지도 함께 고심해야 할 것이다.

이기홍 (강원대.사회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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