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전셋값에 '집 줄여 이사' 행렬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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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98년 2월 경기도 일산신도시 문촌동 주공7단지 21평형 아파트를 보증금 3천7백만원으로 전세 계약해 세들어 살고 있는 朴모씨는 지난주 밤잠을 못 이뤘다.

최근 몇달새 전셋값이 5천5백만원으로 껑충 뛰자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주든지, 나가든지 선택하라고 통보해왔기 때문. 朴씨는 고민 끝에 변두리 대화동 다가구주택 18평형을 3천8백만원에 계약했다.

오른 전셋값을 감당 못해 집을 줄여 이사하거나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는 세입자의 연쇄적인 이사가 시작되면서 수도권 지역의 '전세 역(逆)대란' 이 우려되고 있다.

IMF 체제 직후인 98년 상반기에 전셋값이 급락하자 나가겠다며 전세금을 돌려달라는 세입자 때문에 집주인이 전전긍긍했는데, 2년이 지난 요즘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면서 세입자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일부 집주인들은 2년전 전셋값이 폭락했을 때 계약기간보다 앞서 방을 빼달라는 세입자와 시비를 벌였던 기억을 떠올리며 보증금 흥정 없이 무조건 나가라고 통보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 전셋값 얼마나 올랐나〓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분당 신도시의 경우 평당 전셋값이 최고 수준이던 97년 9월보다 되레 25.2%가 올랐다. 서울 강남권도 3.2% 상승했다.

서울 양천.서초.송파구 지역도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비싸졌다. 더구나 설 이후엔 전세 수요가 늘어 전셋값이 더 오르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건설교통부는 최근 전셋값 상승은 일부 인기지역의 국부적인 현상이며 올해 입주물량이 많아 추가적인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세입자의 엑소더스〓서울 서초동 삼호아파트 31평형을 세놓은 金모씨는 다음달초 계약이 끝나는 세입자에게 전셋값을 아무리 올려 주어도 싫다며 나가달라고 통보했다.

98년 2월 1억원에 전세를 놓았는데 그해 7월 시세가 6천만원으로 떨어지자 차액을 돌려달라는 세입자에게 시달린 끝에 급전을 구해 2천5백만원을 내줬던 앙금 때문이다.

전세금을 올려줄 형편이 되지 않자 이사하는 집이 늘고 있다. 특히 전셋값이 바닥이었던 98년 3~8월에 계약한 전세 입주자들이 당시보다 1백% 가까이 오른 전세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평수를 줄여 이사하거나 값이 싼 변두리로 옮기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셋값이 크게 떨어졌던 98년 3~8월에 이사한 인구는 86만5천2백여명 25만여가구로 추산된다.

부동산업계는 이 가운데 50% 이상이 오른 전셋값때문에 다시 이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시작된 전셋값 분쟁〓벌써부터 전셋값을 올려 받으려는 집주인과 못내겠다고 버티는 세입자간 분쟁이 생겨나고 있다. 세입자가 버틸 경우 명도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집주인이 명도소송에서 이기면 세입자는 2~3개월안에 집을 비워야 한다.

씨티랜드 안시찬 사장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어느 정도 올려 주거나 집을 줄여 이사가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 말했다.

최영진 전문위원.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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