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2류 탈출' 나선 日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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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 정계를 한꺼풀 벗겨보면 케케묵은 모습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직도 특정 부처.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족(族)의원이 설치고 유력인사들의 밀실 담합정치가 위력을 발휘한다. 뇌물스캔들로 실형을 받고도 버젓이 정치를 하는 의원들도 여럿이고, 의원직의 대(代)물림 경향도 강하다.

자민.자유.공명당의 연정 결성도 '경제 회생을 위한 구국의 결단' 이라기보다 당리당략에 따른 '야합' 의 성격이 짙다. 정치를 보는 시민들의 눈이 곱지 않은 것은 이런 것들과 맞물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언론은 정치를 2류니, 3류니 하지만 탄탄한 의회민주주의 장치도 갖고 있다. 정당이 싱크탱크가 된 지는 오래다. 당 산하의 숱한 조사회.부회는 정책의 산실이고, 그 주역은 정치인들이다.

여야 사이에 얽혀 있는 초당파 의원 모임은 타협의 정치를 가져다준다. 여야 창구는 국회대책위원장(원내총무)만이 아니다. 간사장 - 정무조사회장간 채널도 늘 가동된다. 중의원 해산 - 총선설이 파다한 가운데 각당이 독자적인 색채를 내기 시작한 것은 선거를 정책대결로 보는 방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개혁.자정(自淨)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캐치프레이즈는 '정치 주도' 와 '깨끗한 정치' .

93년 비자민(非自民)연립정권에서 비롯된 새 시도는 거북걸음이지만 요즘 하나 둘씩 결실을 보고 있다. 여야 총재 1대1 토론과 국회에서의 관료답변 폐지를 통해 정치권은 '변하고 있다' 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행정의 바다 위에 떠있는 야자열매' 라는 비아냥을 들어온 총리관저의 위상도 한결 높아졌다. 정치인 주도를 위한 시도는 정치인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정치권의 '두뇌' 들이 각료.정무차관으로 발탁되는 현상은 정치권에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다.

정치자금의 흐름도 맑아진다. 내년부터 기업.단체의 정치인 개인에 대한 헌금이 폐지되는 것이다. 모두들 죽는소리를 내지만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면 공멸할 것이라는 점을 정치권은 꿰고 있다. '정치는 돈이고, 돈은 곧 수' 로 빗대진 파벌정치는 설 땅을 잃을지 모른다.

여의도에서도 이같은 새 바람을 만나고 싶다.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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