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착각으로 쓰러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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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제9보 (173~184)]
黑.이창호 9단 白.이세돌 9단

이창호9단의 뇌는 보통 인간의 뇌와 다를 것이다. 이창호의 가슴도 보통인간의 가슴과 다를 것이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다가 어느 날 이창호가 보통사람과 똑같이 감정에 흔들려 실수를 범하거나 하면 사람들은 문득 혼란스러운 느낌에 빠져든다. 이창호도 사람이구나 하며 좋아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전보에서 등장한 이세돌9단의 백△가 이창호를 쓰러뜨렸다. 마법구슬 같은 백△를 사이에 둔 수담을 말로 옮겨보면 이렇다.

(이세돌)"한집만 내준다면 아무 일도 없다. 나는 단지 한집을 원할 뿐이다."

(이창호)"지금 형세에서 한집을 달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이창호는 끝내 잇지 않았다. 오히려 173을 선수하고는 175로 버티며 백△를 무용지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긴박하고도 격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낸 대착각이었다. 이세돌은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흑이 잇지 않은 176 자리를 뚝 끊었다. 흑은 177부터 수를 조이기 시작했고 백은 묵묵히 뒤 수를 메워갔다.

176 등이 수가 되지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손해다. 쌍방 승부를 건 숨막히는 도박을 전개하고 있었다. 184로 뚫고 나왔을 때 이창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돌을 던졌다. '참고도'흑1로 막아도 B, C 양쪽이 자충이어서 흑이 죽는 것이다.

신산(神算)의 착각치고는 참 허망했다. 국후 이창호는 "미세한 형세가 착각을 불렀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착각이 없었더라도 최소 반집은 이기는 바둑"이라고 단언했다(184수 끝, 백불계승).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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