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청년과 한국 중년, LA필을 확 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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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미국 LA 할리우드 볼 교육용 콘서트를 지휘하는 구스타보 두다멜. 10, 11일 디즈니홀에서 열린 LA 필 취임 연주에서는 진은숙씨의 생황 협주곡을 연주했다. [AP=연합]


‘두다매니아(Dudamania)’.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달구는 신조어다. LA 필하모닉의 새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에 열광하는 도시를 표현하기 위해 LA타임스가 만들어냈다. ‘구스타보 더 그레이트(Gustavo the Great)’ ‘구스타비시모(Gustavissimo)’ ‘두드(Dude)’ 등 수많은 별명과 함께 ‘두다멜 용어집’에 들어갈 만한 단어다.

스물 여덟살의 두다멜은 베네수엘라 출신. 정부 차원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에서 음악을 배워 미국에 진출한 젊은 파워다. 에너지 넘치는 지휘 스타일과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음악 해석으로 주목받는 스타 지휘자로 떠올랐다.

◆두다멜 열기에 한몫한 진은숙=이달 10, 11일 LA 디즈니홀에서 열린 취임 연주는 ‘두다매니아’로 들썩였다. 2300석 홀은 매진됐고, 연주회장 밖에서 생중계를 볼 수 있는 3000석 객석에는 7500여명 신청자가 몰려 추첨을 했을 정도다. 정식 취임보다 1주일 앞서 열린 교육용 콘서트에는 1만8000여명이 찾아왔다.

작곡가 진은숙

이 열기의 한 가운데에 한국 작곡가 진은숙(48·서울시향 상임 작곡가)씨의 작품이 있었다. 11일 LA필은 진씨의 ‘슈(Šu)’를 연주한 것. 중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악기 생황(笙篁)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서울시향과의 현대음악 시리즈인 ‘아르스노바’를 위해 14일 한국에 들어온 진씨는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와 같은 음향을 내기 위해 바이올린 넷과 비올라 둘을 무대 위쪽 객석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말로 ‘공기’를 뜻하는 ‘슈’처럼 있는듯 없는듯한 음악을 만드는 장치였다. 여러개의 파이프가 모인 관악기 생황은 사라질 듯 아스라한 ‘A(라)’음을 내며 20여분짜리의 음악을 시작했다. LA타임스는 “동서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했다”고 이 작품을 평가했다.

◆‘두다멜+진은숙’ 콤비 기약=진씨는 “두다멜이 워낙 젊은 지휘자이고 현대 음악을 연주한 경력이 거의 없어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같은 날 베를린에서 자신의 실내악 작품 초연이 있었지만 LA 공연 참석을 선택한 것도 우려 때문이었다. 공연을 마친 그는 두다멜이 “상상 이상의 지휘자”라는 말로 평을 대신했다. “남미에서 자라난 이 지휘자가 난생 처음 보는 생황을 완벽히 이해해 해석한 것은 천부적 음악 재능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의 성공을 계기로 진씨는 두다멜과 더 많은 무대에서 호흡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LA필은 진씨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첼로 협주곡 공연 등을 구상 중이다.

3일 할리우드 볼에서 열린 교육용 연주회에서 LA필은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의 4악장 가사 자막으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남미에서 온 새로운 지휘자와 변화하는 오케스트라를 상징하는 선택이었다. 한국의 작곡가가 이 변화에 동참하면서 ‘합창’ 교향곡의 가사처럼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는’ 장면이 LA 공연장에서 연출되고 있다.

김호정 기자

▶진은숙의 ‘아르스노바’=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4일 오후 8시 한국예술종합학교 내 KNUA홀. 02-3700-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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