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비켜간 금융대책]급박한 대란설…처방은 미래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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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18일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투자신탁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1월 대란설' 이나 최근 금융시장 불안의 진원지가 투신사들이기 때문이다.

대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투자신탁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붙잡는 대책이다. 공사채형 사모 (私募) 수익증권이나 일정기간 환매가 제한되는 신종 MMF 등 신상품 개발을 허용하고 대우채권이 들어가 있는 공사채형 수익증권을 주식형으로 바꾸는 길을 열어준 게 이 범주에 해당된다.

내년 7월로 예정됐던 채권시가평가제를 기존 펀드에 대해서는 사실상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도 채권시가평가로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수익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환매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피해보자는 취지다.

다른 하나는 그래도 투신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초래될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다.

채권시장 안정기금을 조성하고 투자신탁에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돈을 대주겠다는 조치들이다.

이번 대책으로 일단 정부가 금융시장 불안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시장에 확실히 전달, 막연한 불안감은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 안정기금은 시중의 자금수급과 관계없이 투신사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채권 유통수익률이 급등하는 국내 채권시장의 허약한 수요기반을 확충해줄 조치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시장의 불안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우선 각종 대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돈은 하루가 무섭게 빠져나가고 있는데 새 상품을 개발해 신규 자금을 유치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채권시장 안정기금도 설립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해도 다음달초나 돼야 활동에 들어갈 수 있다.

대책의 약효가 있기까지는 은행과 한은이 나서서 투신에 돈을 대주겠다고 하지만 이 조치는 이미 대우사태가 터진 직후부터 시행됐음에도 실제 자금지원 실적은 미미해 실효성이 별로 없다.

이럴 경우 몇 개 투신사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싫든 좋든 투신사 구조조정 시기가 자연스럽게 앞당겨질 가능성이 큰데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정부로선 시장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미 시장에선 투신사 조기 구조조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차라리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많다.

투신사에 대한 불신감을 확산시킨 원인인 대우채권이나 서울보증보험에 대한 대책이 빠진 것도 보완해야할 부분이다.

11월 대란설이 나온 이유가 오는 11월 10일 대우채권 환매비율이 50%에서 80%로 올라가 이 때 환매요구가 몰릴 것이란 데 있고 보면 투신이 대우채권을 안고 있는 한 이번에 파국을 피해도 내년 2월 8일 환매비율이 95%로 올라가면 또한번 대란설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투신이 보유한 대우채권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보증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삼성차나 대우 계열사가 발행한 보증 회사채 이자를 서울보증이 지급치 않아 투신이 계속 손실을 떠안고 있는 상황에선 투신에 대한 불신이 가시기 어렵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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