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호텔에서 안보회의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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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서해상 북방한계선을 무효라고 주장하고 일방적으로 해상경계선을 설정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임시 상임위원회가 어제 아침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당국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로선 놀랍고 충격적이다.

이번 회의만 그런가 했더니 알고 보니 때로는 음식점에서, 때로는 호텔에서 종종 열렸다고 한다.

정부의 보안의식에 구멍이 뚫려도 이만저만 뚫린 게 아니라는 방증이자 정부 고위 안보관계자들마저 보안 불감증이 아닌지 의심될 지경이다.

NSC는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설치된 (헌법 제91조) 국가안보에 관한 최고 정책결정기구다.

상임위는 이 기구의 위임을 받아 실질적으로 안보업무를 논의하는 핵심기구다.

통일부. 외교통상부.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 및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안보수석비서관 (NSC사무처장) 등 정부내 안보. 국방관계의 핵심요직들이 그 위원이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NSC 상임위가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 기구이며, 기밀의 보호가 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지 확연해진다.

당연히 이 회의는 도청이나 감청 등에 대한 방비설비가 철저한 청와대나 정부청사내 회의실에서 열려야 한다.

그런 중요한 회의가 도청 등에 무방비상태인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왕왕 열렸다니 도대체 어안이 벙벙할 따름인데 호텔에서 연 이유가 더 걸작이다.

관계자들은 왜 호텔에서 열렸느냐고 묻는 취재기자에게 회의장소 자체가 보안사항인데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고 적이 당황하면서 참석자들의 아침식사를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나 정부청사엔 식사준비시설이 없어 그런 편의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고도의 기밀유지를 해야 할 회의를 식사 때문에 호텔에서 한다는 설명이 과연 납득될 수 있는 것인가.

한 안보전문가는 호텔회의는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꼭 북한이 아니더라도 서울의 외국정보기관에 노출될 우려도 고려돼야 한다.

최고위 안보관계자들의 보안 불감증에 대한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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